거대한 트위터의 환상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낚시 기사

“20대 무용가女, 트위터 그만둔 이유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181411551&code=940100

 

다 읽고 나면 핀트가 나간 기사.

 

앞으로 SNS가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 기사는 그야말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나서 목수가 연장 탓하는 모습이다.

어디선가 이 기사에 대고 ‘트위터에 와서 싸이질 하다가 도로 싸이월드로 돌아간 거’라고 정확히 정리를 했다. 특히나 유명인이 자기한테 답글 안 해 준다고 뭐라뭐라 하는 건 벙 찌는 일. 그 사람이 도대체 하루에 몇 명한테 댓글 받을 지 그 누가 알며, 또한 댓글을 반드시 해 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는 거 자체가… 근데 싸이월드도 그 짓은 안 하는 거 같던데. -_-;

 

SNS 여부를 떠나서, 도구는 쓰는 사람을 반영한다. 고리짝 비유부터 들자면 같은 칼이라도 주방장이 쓰는 것과 강도가 쓰는 게 다르다는 거랄까.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다만, 같은 칼이라도 회 뜨는 데 좋은 칼과 무 자르는 데 좋은 칼이 따로 있듯 트위터, 싸이월드, 페이스북은 각자 용도가 조금씩 다르고 그 차이 때문에 쓰임새가 점점 달라지는 거다. 트위터는 원래 일방향이다. 그걸 듣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듣는 사람의 몫이다. 트위터는 일방향-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하는 매체다. 답이 굳이 돌아오지 않는 세계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이 ‘여러분들’이라고 말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남들 다 듣는 곳에서 자기 독백하는 사람은 이상해 보이니까. 그 독백의 내용이 뭐냐는 다음 문제다.

트위터가 매력적인 것은, 바로 그렇게 일방향인 게 양방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방향이어야 하는데 양방향이 되는 순간을 맛보게 해 주기에 즐거운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남들과 사귀고 마음이 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그게 귀하고 소중하다. 반드시 남과 마음이 통해야 하는 게 아니지만, 통하면 좋다. 그 확률이 인터넷으로 인해 꽤 올라갔다는 것이 오프라인과의 차이다.

트위터가 무언가를 해 주리라는 거대한 환상이 모든 실망의 근원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환상의 실체라는 건 20대 무용가의 ‘옵하가 나 안 쳐다봐 잉잉잉’ 정도였고. 환상의 크기에 역비례한 게 실체인 건데,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지. -_-

 

 

 

추신:

SNS 관점에서 이 기사를 다시 봐도, 이 기사엔 엄청난 오류가 있는데,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수평매체가 아닌데 되게 수평적인 것으로 오해를 하는 거다. 우리 사회가 무지막지하게 수직적이다 보니 인터넷이 상대적으로 수평이 된 것이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그물망(네트워크)다. 우리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뿜어내는 그물을 보면 알 듯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그물은 축구장 골대 그물같지 않다. 한 쪽으로 쏠리고 한 쪽은 듬성하다. 명백히 불균형이다. 하지만 그 전체의 균형은 맞는다. (그래야 뭘 잡지)

상대적으로 수평적이란 말은 결국 우리가 인터넷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수평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터넷 인프라를 얼마나 잘 깔아주느냐에도 달렸다. 고속 인터넷망이 전국 방방 곡곡에 깔리는가, 연령 성별 등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가 등도 중요하다. 지금 인터넷이 수평적이라거나, 야당 성향이 높다거나 하는 분석은 접근성 문제와 관련이 깊다.

생각해 보면 SNS, 싸이월드, 인터넷, PC통신… 등 과거를 뒤짚어 보면 새로운 매체는 엄청난 환상과 섣부른 오해를 받아 왔다.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전자 정보를 주고받은지 이제 겨우 30여년.  아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라고 하지만 역시나 같은 거 반복은 좀 난감하지. 인터넷 관련한 걸 보면 상당수가 ‘결과’를 성격이 원래 그런 것으로 본다. 그 결과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 속성은 아닌데.

 

 

추신2:

경향신문이 사람 골 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특히 자기들 봐 주는 사람들 많은 인터넷 쪽을 이렇게 헛다리 짚는 거 보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