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얄팍함의 장점과 단점, 넷플릭스 “킹덤”

** 이 글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2019) 시즌 1의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

넷플릭스에서 만든 한국 사극으로 화제를 모은 “킹덤”을 봤습니다. 조선시대 좀비물인데 빨리 달리는 좀비가 예고편에 나와서 어엄 했는데(저는 자고로 좀비는 느려야 좀비라는 편견이 강해서요) 어떤 분이 ‘한국은 빨리빨리가 몸에 익어 좀비도 빨리빨리 다닌다’는 말씀에 급납득했습니다.

저는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극 자체가 막히지 않고 쭉 진행되는 편이고 시각적 면에서 잘 만든 작품입니다. 다만 가상의 조선시대를 표방하다 보니 전쟁 끝나고 얼마 후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선조 후반같은데 옷차림은 영조 후기 이후 이러고요. 아마 잘 아는 분들은 입성 차린 것 무기 든 것 이런 것만 봐도 짬뽕을 넘어 짬짜면의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 영화에서 가끔가다가 가상의 유럽 중세 국가 이런 거 등장하면 서양인들 괴로웠던 거 아 저러했겠구나 실감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장점과 단점이 골고루 섞여 있달까요. 장점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 장단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지루함 없이 막히지 않고 쭉 이어 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작품답게 시각적인 면에서 아주 섬세하고 양질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의상 세트 등의 미술과 더불어 촬영도 잘 되었습니다. 촬영기술을 폼내기 위한 촬영은 거의 없고(하지만 드론 촬영으로 보이는 장면은 아직까진 여러분 이거 드론으로 촬영했어요 잘 했죠 하는 기운을 내뿜죠 ㅋㅋㅋ 이건 드론을 쓰는 모든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거라 “킹덤”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ㅎ) 이야기 진행과 어우러지는 촬영이 돋보입니다. 좀비와 싸우는 장면에서 과하게 현대식 액션 카메라 흔들기 이런 게 두드러지지 않아 저는 좋았어요. 그 얘기는 액션 안무가 잘 되었단 뜻이겠죠.

“킹덤”을 시각적 요소로만 본다면 매우 좋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나쁘지는 않은데 아쉬운 소리가 좀 많이 길게 나오는 편이에요. 일단, 이야기 전개 자체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사극이기보다 외국 중세 배경 판타지에서 보던 정형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혈통을 지닌 계승자가 간신모리배의 핍박을 받고 그 과정에서 백성을 아끼는 군주로 성장한다 – 딱 그겁니다. 그래서인지 이 “킹덤”은 조선시대 언젠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엉뚱하게도 외국어 더빙으로 보면 더 어울립니다. (특히 중국어 더빙이 최고라는군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진지해지면 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혈통’이 당위성을 띈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아무리 혈통주의에 쩔어 있다 해도) 그냥 이야기의 장치이지 진지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적통자가 백성 혹은 민중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세자가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하는 것도 진지함의 영역이 아니라 이야기 관습의 영역이고, 세자의 인물도 깊이가 그다지 없이 평면적이고 얇습니다.

이는 세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각 인물들은 사건사고를 통해 달라지기는 하는데 그게 인물해석에 깊이를 주는 성장은 아니에요. (적어도 시즌 1에서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한 발판으로서 성장입니다. 왕위를 이어받을 이유가 적통성 밖에 없던 세자는 나라의 기반이 백성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한 지역에서 스승의 조수로서 일상을 보내던 의녀는 나라 전체를 구할 수 있는 비법을 스스로 발견해야 하고, 의문의 과거를 지닌 일개 조무래기 백성은 괴물과 싸워 적통자를 지키는 용사가 되고, 호위무사는 자기가 보호하는 적통자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조언자가 됩니다. 인물의 성장이라고 하는 것이 다 어디서 보던 것의 반복이죠. 심지어 악역들도 전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의 세력으로 나오는 조씨 집안 사람들은 정말 하나같이 어디서 보던 무게 잡는 악당들입니다. (달리 중전더러 ‘한국판 세르세이’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죠)

“킹덤”의 인물이 얄팍한 것은 단점만은 아닙니다. 이야기 자체가 관습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해서 평면적이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인물의 얄팍함이 꼭 무성의함도 아니죠. 이야기를 크게 조감할 때는 단선적인 인물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 상황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착취로 굴러갈 때 발생한다는 큰 주제로 볼 때 훨씬 흥미롭죠.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이질적으로 좀비를 놓으니 훨씬 그 주제가 잘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동래부사가 백성의 ‘피와 살’을 가지고 주지육림을 벌이는 장면은 대놓고 주제를 읊는 것에 가깝습니다. 단순한 인물구현이 이럴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드디어 단점 나열 시작)

“킹덤”의 가장 큰 문제는 인물이 단선적이라던가 평면적이라던가 전형적이라던가 하는 게 아닙니다. 극을 구성하는 대주제가 더 발전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 것에 고찰을 하지 않고 아이구 사람이 사람 먹었네 이를 어쩝니까 하고 끗- 이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평면적인 인물한테도 영향을 줍니다. 아무리 평면적인 인물이라도 극 안에서 고유성을 띄면서 변화할 수 밖에 없는데, 극 밖에서 좋은 역 나쁜 역을 정해주고 해석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악당인 ‘중전 애비’ 조학주 대감 얘기가 아니라 ‘역병확산 빌런’ 영신 얘깁니다. “킹덤”이 인간이 인간을 먹는 잔혹성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이 바로 영신이에요. 처음 괴물을 만든 건 금권을 추악하게 유지하려는 ‘중전 애비’ 조학주와 중전으로 대표하는 권력층의 탐욕이었죠. 하지만 그걸 죄 없는 평민에게 퍼뜨린 자는 영신이고, 그게 전염병으로 확산된 계기는 다름아닌 영신의 어줍잖은 구원자 행세입니다.(영신은 정작 그 고깃국 안 먹었을 때 저 쌍욕했잖아요)

조학주와 영신 둘 다 공통적으로 폭력적인 자기애를 기반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학주의 탐욕은 극 안에서 천하에 죽일 짓이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영신의 자만심은 계속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면피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영신의 활약은 누적될수록 헛발질입니다. 영신이 몸 바쳐 사람들을 구하고 영웅적인 인물로 보일수록 이 극은 ‘우리 편’은 영웅놀이 하다가 몇 백 명이 죽어도 상관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원래 좋은 역으로 만들었고 의도가 좋았는데 단역들 죽은 건 좀 봐 줘라 이러는 거죠. 백성을 무지렁이 시혜 대상으로 취급하는 존재는 극 안의 악당이 아니라 극 밖의 작가와 감독이 되어버립니다.

영신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이 바로 조범팔입니다. 영신과 조범팔은 정확하게 같은 꼴로 서비 주변을 맴도는데, 범팔은 일종의 코믹 캐릭터로서 강인한 생존력과(…배에서 어떻게 살았대요?????) 서비한테 구박 받는 애잔함이 극적 기능입니다. 서비를 좋아하고 서비의 꾸짖음에 놀랄 줄도 아는 인물인데, 그런다고 범팔이 백성을 착취한 게 사라지나요? 죄는 백성한테 저질렀는데 주인공에게 착하게 대하면 그 인물이 긍정적 인물이 되나요? 주인공한테 아무리 잘 해 봤자 악역이에요.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어디든 광범위하게 저지르는 인물 작법의 문제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평소 자기보다 약한 애들 괴롭히던 플래시가 피터 파커한테 다정하게 대하니까 마치 긍정적인 인물처럼 나오는 거 정말 같잖더라고요.)

그래도 범팔은 코믹 캐릭터이고, 무엇보다도 서비가 범팔의 한계(라고 쓰고 인격적 하찮음이라고 읽습니다)를 지적합니다. 그런데 영신은 그게 없어요. 영신은 뭔가 세상에 불만 많은 평민 남자로서 도움을 구하러 간 의녀인 서비에게 화풀이를 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불한당일 뿐인데, 좀비 대처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인공 자리를 꿰어 찹니다. 자기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영신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개진상일 뿐입니다. 영신이 진심으로 자신의 오만을 반성할 극적 기회를 뺏은 건 작가와 감독입니다. 그런 오만한 인간이 극 바깥에서 긍정적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이유로 시각매체인 영상에서 멋있는 액션을 줘서 악행을 덮으려는 작가와 감독은 극을 얄팍하게 만들고 맙니다. 자기반성이 없는 자의 활약은 긍정적인 게 아니라 그냥 위선이죠.

역병확산의 주범이라는 건 쏙 빼고 말하죠.

작가와 감독의 제일 큰 실수는 바로 그 점입니다. 똑같이 자만과 자기만족에 기반한 악행을 했는데 누구는 태생이 악역이고 누구는 선역이에요. 이것은 작가와 연출가 모두의 판단착오이며 안이함 그 자체입니다. 극중 인물의 선함과 악함이 인물의 행동결과가 아니라 극 바깥에서 지정했다는 이유로 결정되는 일종의 지독한 ‘신분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킹덤”에서 백성을 위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나오지만 세자의 권력확보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듯, 백성들이 양반들에게 당하는 무고한 희생자라고 얘기하지만 주인공으로 뽑힌 영신을 빼고 백성들은 무지렁이 집단으로 이야기를 악화하거나 선정성을 강화하는(서비의 동료 의녀가 죽는 장면은 극을 방해할 정도로 선정적입니다. 여자 죽는 걸로 뭔가 근사한 장면 하려는 발상은 늘 후져요) 장치로만 나오죠.

이 판단착오와 안이함이 두드러지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중전이죠. 지금 “킹덤”의 중전을 둘러싼 비판은 배우의 개인 역량에 부당하게 치우쳐 있는데, 중전의 인물화는 작가와 감독 차원에서 문제가 상당합니다.

도대체 왜 중전이 신하들에게 존대말하죠? 이것은 중전의 입지를 상대적으로 낮추겠다는 의도라고 보기엔 극단적으로 안이한 장치인데다가 이 작품이 사극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극 자체의 진지함과 그 많은 장점을 빼 버려요. 계급사회라는 것은 나이, 혈통 상관 없습니다. 높은 계급에게 기어오르는 것 자체가 일종의 반동이자 혁명입니다. 그런데 조대감이 그런 인물인가요? 오히려 기존 체제에 빌붙은 인물이잖습니까. 나중에 성씨 갈아치우겠다고 나서겠다고 하면 그 때 하면 되는 것인데, 감히 신하가 중전에게 반말을 지껄이고 중전은 아랫것이 기어오르는 것을 남들 앞에서 감내한다고요? 오히려 작가와 감독이 여자가 남자에게 반말하고 남자가 존대말하는 꼴을 못 보겠다고 뒹구는 것처럼 보이기에 딱 아닙니까? 완전 이건 자충수에요. 시청자는 극에 집중해야 하는데 작가와 감독 왜 저래 하고 극 밖으로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중전을 둘러싸고 극에 몰입하지 못하는 장치가 지나치게 많아요. 중전 애비는 악당이니까 신하 주제에 중전에게 반말을 찍찍 날리는 하찮은 인물이 되었는데 하는 대사는 전부 다 ‘나는 악당이고 우리 주인공을 괴롭히겠다’ 이런 얘기 밖에 안 하잖아요. 이 경우는 얄팍한 캐릭터가 완전히 단점이 되고 맙니다. 물리치기에 매우 힘든 악당이라고 해서 수준 낮아 보일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다가 중전과 조학주의 대화는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에 가깝기 때문에 인간으로 이해를 못 하게 되고 장점이건 단점이건 평가를 하며 보게 됩니다.

중전과 중전 애비(… 왜 도대체 저는 조학주라고 이름이 안 나오죠)의 대화 장면은 대화이기보다 극의 핵심요약 정리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 권력을 더 쥐기 위해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하는 긴장관계라는 것을 보여줄 뿐, 둘의 관계를 추론하며 볼 수 있는 극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이 둘의 날 선 관계는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통해 드러나는 게 아니라 ‘둘이 서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댄다’하고 지문을 읽는 것에 가깝습니다. 갈등을 상황전개로 표현 못 하고 몇 마디 말로만 퉁치는데, 솔직히 중전 나오는 장면은 6화 마지막 부분 빼고 다 그렇죠. 중전이 제대로 된 인물로 보이는 부분이 유일하게 6화 마지막 부분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물설명서를 읽는 게 아니라 인물을 연기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중전 애비’ 조학주가 인물설명서를 읽는 편임에도 인물 이해에 문제가 없는 것은 그만큼 평면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도 조학주는 그냥 권력에 미친 자이고, 사람을 짓밟아 가며 자기의 배를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 믿는 정형으로서 극 끝까지 변하면 안 되는 자입니다. 조학주의 아들이 중간 퇴장 하는데 쓰러뜨렸다 하는 통쾌함 말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 것도 조학주와 아들의 인물기능이 도통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학주가 아들을 잃은 비통함마저 ‘악당이 악에 받치는 계기가 된다’라는 지문을 읽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장면은 기실 ‘중전은 자기를 우습게 보고 아들만 챙기던 애비가 비통한 것을 보고 복잡미묘한 기분을 느낀다’로 써먹기 딱 좋은 장면인데 조학주가 이를 득득 간다 이걸로 끝이죠)

그래서 더더욱 중전을 초반에 왜소화하려는 작가와 연출가의 시도가 더 패착입니다. 중전은 조학주하고 별개의 인간으로 등장하잖아요. 초반에 중전이 더 윗전인데도 신하인 아버지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이 등장했어야지 고증까지 어겨가며 어리숙하게 존대말까지 쓰게 한 것은 인물화에 독입니다. 중전이 등장만 하면 극 진행에 몰입 못하게 된 건 작가와 연출가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인터뷰를 보면 제작진 자체가 조선 정치계에서 ‘중전’의 입지를 고증재연까지 무시하고서도 그게 잘못된 줄을 모르니 앞으로도 중전이 제대로 나오긴 틀린 것 같습니다.

“킹덤”에서 누구나 칭찬하는 장면은 시체를 불태우자니까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고 괴물한테 쫓기면서도 천것이 양반한테 덤빈다고 우는 유교 빌런(…)의 등장인데요. 이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 소비적인 장면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무척 아깝습니다. 작가와 연출가가 유교 국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그 소재를 그렇게 낭비하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정말 커요. 이 드라마는 종종 유교와 혈통주의를 혼동하는데, 짧게 등장하지만 ‘유교 빌런’도 그런 편입니다.

유교 국가라는 것이 좀비와 만났을 때 어떻게 될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아까운 장면이 있습니다. 중전 애비(에이 이렇게 부르고 말래요)가 좀비가 된 왕을 다른 신하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하는 일장연설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유교 사대부의 주둥이 전쟁이 조금이라도 나왔어야 해요. 유교에서 ‘인’과 ‘예’를 실행하지 못하는 자를 과연 인간으로, 왕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조선 사대부는 단연코 토론이 최대의 무기고, 자기 정적이 말빨로 자신을 이기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할 테죠. 그 신하들과 중전 애비의 날 선 언쟁이 오가야 했는데, 그냥 중전 애비의 일방적 훈계로 끝나고 말죠. 그 장면에서 학자로서 인간을 정의하는 방법의 대립이 제대로 (양보다는 질의 문제) 나왔다면 정말 주제가 살아났을 겁니다.

백성을 핍박하는 권력을 비판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 것은 알겠지만, 비판 방법이 피상적이고 겉핥기에 불과하다면 비판의 가치 자체가 희석됩니다. 백성은 구해야 할 대상이지만 무식한 방해꾼에 불과한 존재로만 등장하고 극 밖에서 결정한 정의를 극 안에 우겨놓고 강요하는 것이 지속된다면 남는 것은 좀비 떼를 물리치는 선정성 밖에 없습니다. “킹덤”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이 꽤 크고 그것은 시즌이 진행될 수록 커질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통해 이야기를 크게 보고 더 발전시켜 볼 수 있는 요소는 보이지만, 깊이 있는 확장 가능성은 시즌1에서부터 봉쇄되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킹덤”이 재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그거죠.

잠깐 지나가는 소비적인 장면이라서 좋은 장면은 단연코 옥에서 칼을 쓴 죄수 1과 2의 상황이죠. 정말 그 장면은 3초만 더 있었으면 진짜 빵빵 터졌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으아하하하핳 웃으려는데 장면이 끝나는 느낌이어서요. 바로 그런 장면이 잠깐 소비적으로 등장해도 빛나는 장면이죠.

그리고:

  • 이 작품을 찍으면서 과다 노동으로 미술팀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편 끝에 추모의 인사가 나오는데, 제대로 된 배상이 있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시즌2 촬영이 올해 2월이라니까 빠르면 올해 말 아마도 내년 초 공개가 될 텐데, 제작진 모두의 안전을 당연히 보장하고 나오기를 빕니다.
  • 저는 중전 배역에 대한 불만이 배우 개인의 역량에만 쏠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이 경우는 연기력에 대한 논란도 배우가 아닌 감독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청각 작품을 총괄하면서 배우의 음성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대로 공개했다면, 그건 연출가가 감내할 몫입니다. 감독은 작품성이라고 부르는 완성도와 만듦새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그 권한만큼 평가도 들어야죠.
  • 아이는 성인이 되기 전단계의 ‘자원’에 불과하다 보던 중세시대가 배경인데 아이를 아끼는 현대 이후의 사고방식에 기반한 장면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나오면 늘 괴상하단 말입니다. 현대 시대의 사람이 보기에 폭력이 되지 않을 장면을 만드는 것과 현대 사고방식을 끼워 넣는 건 다른데 말이죠. 하지만 아직도 한국 영상작품에선 아동 학대를 선정적으로 전시하는 것을 사회고발과 헛갈리니 그것보단 낫다 이러겠습니다.
  • 확산 빌런(…) 영신 뭔가 배경이 있는 거 같은데, 시즌 2에서 한국 드라마답게 출생의 비밀 나오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알고보니 범팔이 울고 갈 정도로 엄청난 집안 출신!!! 새 인물 등장하는데 알고보니 형 가지마 코찔찔이!!! 알고보니 서비와 영신은 남매!!! 아니다 코찔찔이가 서비!!!
  • 제 소원이 중전이 애비를 좀비 떼한테 던지고 ‘이는 사나 죽으나 차이가 없는 애비렷다’ 하는 거 보는 것입니다. 중전 애비는 중전한테 죽어야 합니다.
  • 영미권에서 이 드라마 보며 모자에 열광하는 거 이해는 가는데 소셜미디어란 정말 엉뚱한 데서 폭발적으로 터지는구나 싶습니다. 진짜 그 타래 재미있게 봤네요.
  • 그리고 솔직히 배우들 발성 연기가 전반적으로 별로로 들리는 건 하도 추워서 다 입이 얼었던 것도 여러 몫 하지 않을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