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저스:엔드게임을 봤습니다

“어벤저스: 가망이 없어 아니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을 봤는데요. 음 저도 분노했습니다… 루소 형제 나와 싸우자는 거냐.

슈내와 엑스파일 오래 보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시리즈 제작자는 관객과 싸우려 들면 안 됩니다. 관객이 머리수가 많이 때문에 어느 누구 하나라도 작가의 의도를 맞추거나 의도보다 더 나은 걸 내놓을 수밖에 없고, 좋은 의견은 당연히 빨리 퍼지죠. 그래서 TV 시리즈가 망하는 길을 걸은 것이, 예측가능한 수를 쓰되 그것을 말이 되게 만들지를 않고 관객을 놀래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그냥 사건을 엎어 버리고 또 엎고 또 엎는 것을 반전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달리 <파리의 연인>이 다 꿈이구나를 진심 반전으로 쓴 게 아닙니다.

관객을 놀래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반전을 빙자한 뒤집기만 시도하다 보니 이야기의 인과관계는 말 그대로 실종됩니다. 양질의 이야기를 결정하는 주요 사안은 인과관계인데 이게 파괴되죠. 에피소드 스무 개 넘게 악당 어떻게 물리치지 하다가 마지막 편에 등장한 인물이 악당의 약점을 알려줘서 악당 무찌름 – 이런 상황도 잘 벌어지죠. 아니면 시즌 초기에 관객 놀래켜야지 두둥 하면서 내놓은 설정이 완전 폭탄급이어서 악평이 자자하니까 만들어 놓은 6편까지는 그 얘기 가끔 하다가 시즌 마지막회까지 감감 무소식이다가 마지막회에 푹찍 하고 끝내고 말죠.

“엔드게임”은 페이즈3의 끝이지만 TV로 치면 시즌 마지막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다음 시즌 결정된 오래된 시리즈의 시즌 마지막회에서 볼 수 있는 단점이 속출합니다. 계속해서 본 팬에게 서비스 하느라 새로 보는 사람들은 뭐지? 뭐지? 하는 사건이 속출하죠. 하지만 이건 사소한 사건 배치니까 그렇게까지 단점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능열쇠같은 설정을 하나 넣어 놓으면 그 다음의 긴장감이 다 떨어진다는 거죠. 앞으로 나올 페이즈 4의 작품들은 다 하나같이 그 얘기 들을 거에요. 안 될 거 같으면 타임머신 쓰면 되는데 왜, 이러고요.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역시 인물 활용입니다. 시즌 마지막회는 큰 사건 하나 만들어야지 하고서는 중요 인물을 죽이는 게 목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됩니다. 가모라와 나타샤 얘기 맞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죽고 나서 화면 상에서 애도를 받는 장면이 얼마나 길었는지 생각하면 이 둘에 대한 취급은 완전히 개차반입니다. 루소 형제를 매우 쳐야 합니다.

전편 “인피니티 워”부터 그랬지만, 소울스톤 설정 완전 어거지 아닌가요? 구멍 숭숭 설정을 가지고 비장한 척 하면서 죽은 여자 시체 전시하는 카메라 구도까지 최악이에요. 이건 루소 형제 생각머리가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밖에 안됩니다. 타노스와 가모라의 장면+자기 딸들 출연시킨 거 생각하면 그렇게 치장해 주는 토니와 마구나 장면도 음습하기 그지 없어요. 루소 형제는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에 이입해서 폭력 아버지의 학대를 사랑이라 주장한 셈이고, 그 때문에 아무리 극 내내 바튼과 스타크를 내세워 좋은 아버지가 어쩌고 가족이 어쩌고 해도 소름끼칠 뿐이에요.

가모라를 살해하는 장면을 객관적으로 보면 소울스톤은 사랑과 집착을 구분 못하는 멍청이라고 보여주던가 했어야죠. 그리고 왜 꼭 서로 아끼는 사람들만 거기 같이 갑니까? 만약에 토르와 로켓 같이 갔으면 어쩌려고요? 그리고 소울 스톤 찾으러 한 명만 오면 어쩌려고요? 보는 와중에 설정 구멍을 관객이 느끼면 어떻게 합니까?

“엔드게임”이 (팬에게 즐거운 것과 별개로) 못 만든 영화가 된 건, 가장 핵심 사안인 시간여행이 허술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타임머신 만드느라 5년 걸렸다면 이해하지, 5년 지나고 나서 몇 달만에 타임머신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여기서도 역시나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나오는데요, “백 투 더 퓨처”가 당시 시간여행 작품에서 독보적인 것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시간여행 작품 상당수는 과거로 갔기 때문에 현재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인과율을 설득력있게 엎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과거로 가서 현재를 존재하게 만들었지만 막판에 과거로 가면 현재를 덮어쓰기로 바꿔 버릴 수 있다고 말이 되게 제시했거든요. 30년 다 되어 가는데도 시간여행 하면 다들 그 영화 얘기를 달리 하는 게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같이 이야기 밀도 있게 짜는 사람이 “터미네이터 1″에서는 현재가 미래의 결정요인이었다가 2편에서는 미래를 바꾸자는 플롯을 짠 건 전적으로 미래가 변화가능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엔드게임”에서 설명하는 양자역학으로 인한 새로운 시간대 설명이 말이 되나요? “앤트맨”을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거기에 나온 양자역학은 입자간의 간격 때문에 설명이 나온 것이고 시간여행 얘기는 언급도 안 되었어요.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대충 설명하다 보니 설득력이 하락하는데 후반에 주인공한테 뭐 만들어 주겠다고(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걸 뒤엎어 버립니다. (새로운 시간대가 창출되면 스티브는 그 자리에 기계를 쓰지 않고 나타날 수가 있나요?)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런 줄 알아 하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관객과 싸우려는 시리즈 제작자의 행태입니다. 정말 시건방져요. 말을 하려면 좀 말이 되게 하던가, 아니면 모든 캐릭터를 아이구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똑같이 받들어 모시던가 해야지 자기들이 아끼는 캐릭터 위해서 다른 캐릭터 쩌리 만들며 그러면 어떻게 해요. 페이즈 4가 위험한 건 특정 캐릭터가 퇴장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저런 제작진의 행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는 관객의 촉이 발동해서죠.

그리고 이건 영화와 TV, 스트리밍을 같은 세계관으로 두는 마블 영화사의 문제인데요. 이거 “엔드게임” 때문에 넷플릭스 마블 시리즈 다 취소된 거 아닌가요… 개분노. 내 제시카 존스 내 놔 엉엉 그리고 에이전트 카터 어쩔 거야… 에이전트 카터를 보며 기뻐한 내 시간을 강탈했어 어쩔 거야

  • 스티브가 버키를 미래에 버려두다니 말이 되나요. 버키를 과거에 데려다 주고 자기가 현재로 오면 모를까. 자기만 아이스 꽁꽁으로 그 시대 건너 뛰었대요?
  • 예전 가모라는 분명 현재 피터 퀼을 보고 내가 저딴 배둘레햄을 사귀다니 이러고 도망간 게 틀림없습니다.
  • 토르 얘기는 안 할래요.
  • 으허허허 캡틴 마블 최고. 다 때려 부셔 주세요.
  • 완다가 타노스 앞에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나타났을 때 저 박수쳤습니다.
  • 5년 후에 어쩌고 정말 대책 없어요. 뭔가 파스스했다가 정신 차리니까 5년 지나고 세상 반쯤 박살 나 있는 아포칼립스도 어처구니 없는데 5년 정도 지나서 대충 정신 추스리고 사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5년 전 사람들 뚝 떨어지면 그거야말로 더 심리상담 필요한 거 아니에요? 이건 생각하면 할수록 어벤저스 일당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리고 인간 문명을 지탱하는 인력의 반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해안과 이어진 강에 돌고래가 들어옵니까? 오염물질 배출이 더 늘어났겠죠.
  • 솔직히 저 소울 스톤이 개새끼라서 소원 이뤄준 다음에 소원 뒤엎는 능력이라도 있나 했잖아요…

3 Replies to “[영화] 어벤저스:엔드게임을 봤습니다”

  1. 안녕하세요ㅠㅠㅠㅠ
    마블 덕질 n년차가 엔드게임과 함께 모두 날아간 뒤 이주째 잠도 못자고 화나있다가 이 글을 보고 구구절절 공감되어 댓글을 남김니다.
    일단 반전 for the sake of 반전도 정말 너무했고요ㅠ
    나타샤의 취급과 토니의 어이없는 죽음 이 모든게 다
    ‘관객과 싸우자는 것’ 진짜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배우계약 만료의 상황을 전제로 스토리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그 스토리를 받아들이길 요구하면서 흥행은 잘될거고 없앨 캐릭터는 다 없앴다는 루소형제의 안일한 태도 너무 화나요. 그럴거면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모두의 서사를 깔끔하고 관객들의 마음에 차도록 마무리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ㅠ 토르, 호크아이, 헐크 는 영화진행의 장치로만 써먹어서 캐릭터성 붕괴된거 진짜 이게 젤 화나요. 토니 스티브 챙겨주는거 좋지만 루소형제 2016내한에서 모든 캐릭터는 열성팬층이 있다고 해놓고 대체 엔드게임보고 토르 헐크 열성팬층은 어쩌라는 걸까요 토니와 스티브의 엔딩을위해 깔끔한 서사도 없이 희생당한것 같아요ㅠ
    그리고 루소형제 이번 영화에서 어벤져스1,2 감독 조스웨던 이랑도 싸우겠다는것 같았어요. 그 감독이 일궈논 모든 캐릭터간 관계성 같은거 다 깔아뭉개더군요. 진짜 어떻게 영화가 그냥 예전영화본 관객들이 보면 흥미로울 장면만 대충 짜집기한 것 같을까요…
    그리고 루소형제 토르나타샤 호크아이 배너 취급 이따위로 할꺼면 액션이라도 잘 뽑던지
    캐릭터별 액션(예를들어 호크아이는 활액션)도 몇몇만 잘나오고 나머지는 망했어요.
    그리고 시간여행 관련 부분은 영화내에서 정의된 시간여행의 규칙과 설정충돌하는 부분이 많아서(예. 스티브는 대체 어떻게 스톤을 돌려주러간 것인가?)

    1. 백투더퓨처 등장인물들이 욕한거 너무 어이가 없네요.
      그리고 그럼 스티브는 스티브 두명과 페기 한명이 사는 세계로 간건가요? 그리고 …하… 설정붕괴 설정충돌 장난이 아니에요ㅠ
      루소형제의 최악의 굿바이에 이주일간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떨고 있다가 이글을 읽고 정리가 좀 되는것 같네요. 구구절절 죄송합니다ㅠㅠ
      하지만 제가 댓글을 단 이유는 이것이 아닙니다.

      엔드게임의 피아스코 후 저는 마블에 정을 뚝 떼고 제자신을 위로할 작품을 탐닉하고 있었는데, 카스티엘과 미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님은 우리나라웹에서 찾을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슈내 메타 라이터이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슈내와 슈내 팬덤가 지난 14년동안 밟아온 길을 속성으로 밟고 있는데, 이 사이트의 메타가 정말 소중해졌습니다.ㅠㅠ 그런데 시즌 12이후 슈내와 미샤 관련 포스트가 뚝 끊겼더라고요ㅠㅠㅠㅠ 혹시 슈내를 포기하신 건가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시즌 13 14가 워낙 갈데까지 갔다고 악명이 높더라고요. 슈내 시즌15후 종영 소식 들으셨죠? 혹시 돌아오셔서 제 오아시스가 되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초면에 구구절절 죄송합니다ㅠ 요즘 미샤와 캐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정말 좋아요. 아직도 미샤를 좋아하시나요? 랜덤액츠 아직 참여하고 계시는것 같으신데…
      이런 댓글, 실례가 아니길 바래봅니다.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Justarather / 안녕하세요. 제가 5월 하순에 여행을 다녀왔다가 밀린 일을 하느라고 이제서야 댓글을 보았습니다. ;;;; 제게 엔드게임은 드라마 10년 가까이 보다 보니 보던 드라마의 전철을 밟는 듯 보여서 화는 나는데 사실 잊기도 빨리 잊게 되었네요. ㅠㅠ
        그나저나 캐스와 미샤 팬이시라니 정말 반갑습니다. 아직도 슈내 뭐라뭐라 하면서도 보고 캐스와 미샤 콜린스 좋아하기는 하는데, 리뷰는 쓰지 않는 상태입니다. 리뷰를 쓸 만한 에피소드를 못 만나서 그렇기도 하고 그냥 트위터에 몇 마디 쓰는 정도가 되었어요. 랜덤액츠에 가끔 기부금 내고 기시 이벤트 목록 구경하러(…) 참가하는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미샤 팬 뵈니 정말 기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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