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st Dec2001

뱀파이어, 멀더보다 심각한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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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해결사 버피에게는 뱀파이어 애인 엔젤이 있었다. 리암이란 인간에서 흡혈귀가 된 안젤루스는 자기 집 식구들부터 어느 하나 안 가리고 악행을 저질렀고, 집시의 보복으로 저주를 받는다. 그 저주는 ‘뱀파이어이되 인간의 영혼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악한 짓은커녕,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려 하고 이름을 엔젤로 바꾼다.

거기서 엔젤의 딜레마는 시작한다. 자신의 본질은 어떤가? 과연 엔젤은 착하고 안젤루스는 사악한가? 그렇다면 안젤루스와 엔젤이 되기 전의 리암이라는 인간은? 버피 TV판에서 처음 등장한 엔젤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갈피를 못 잡을 정도이다. 엔젤은 처음엔 버피의 수호천사로, 그 다음에는 적군으로, 그 다음에는 애인으로, 그리고 나서는… 턱시도가면보다도 더 심한 널뛰기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즉각적으로 엔젤이라는 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모순과 고민은 다 안고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FBI의 폭스 멀더를 불러다가 누가누가 더 고민하나 경진대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엔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늘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TV 시리즈 중에 무척이나 빈번한 현상 중에 ‘스핀오프(spin-off)’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어떤 드라마의 캐릭터 중 몇 명을 분리해서 아예 다른 시리즈를 만드는 경우를 가리킨다. (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다른 드라마에 등장해서 겹치는 것은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 한다) 위에서 좀 길게 설명한 엔젤은 버피의 인기를 등에 업고 딴 살림을 차렸다. 바로 <엔젤>이다.

TV 시리즈 <엔젤>은 버피 시리즈와 분위기는 아주 따악 비슷하다. 괴물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LA의 사립탐정 엔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고민 많은 엔젤의 특성상 약간 어두운 분위기는 있지만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드라마의 흐름은 경쾌하기 짝이 없다. 특히 이전부터 제작자 데이비드 그린왈트와 함께 작업을 해 온 하워드 고든은 시리즈의 흐름을 잘 잡아준다. 이 세상의 모든 고뇌는 다 자기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려 사는 주인공과,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기중심성향을 잃지 않는 조수, 도와주기는 하는데 좀 답답한 조력자. 이렇게 셋이서 LA를 배회하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엔젤 역의 데이비드 보레아나스는 버피 시리즈에서보다 <엔젤>에서 좀 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버피가 <엔젤>의 시즌 초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버피는 엔젤을 마음에 묻어두고 말지만 엔젤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고 ‘홀아비 주인공’들의 대열에 끼인다. 고민마저 폼 잡고 하던 <버피>의 엔젤은 후까시가 아니라 200년 묵은 흡혈귀답게 복잡다난하고 속 깊은 <엔젤>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버피만의 연인에서 모든 여자들의 연인으로 만들자는 제작자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엔젤>은 주로 엔젤이 여자들을 구해주는데, 이걸로만 봐도 버피 시리즈를 순전히 엔젤 보느라 봤던 여자들을 위한 쇼가 틀림없다.

엔젤의 모호하고 불균질적인 특징은 보레아나스가 얼굴과 눈은 똥글똥글 귀여운데 떡대가 엄청나다는, 불균형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것과 함께 배가가 된다. 제작자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달리 스핀오프까지 만들 이유가 없다. 엔젤은 LA의 약자들을 지키는 천사이지만 여성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수호천사’니까.

<엔젤> 역시 <버피>처럼 경쾌함 그 자체를 추구하지만, 본성에 대해 고민하기에 경박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인봉사라는 대의명분이 후까시가 되지 않도록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사실 허무하게시리 그렇게 고생하다 일격에 적을 물리치는 것은 버피나 엔젤이나 똑같다.) 이 명랑함의 핵심 왕공주 코델리아의 버전업은 너무나 대단해서, <버피>때와 똑같은 신랄함으로 엔젤이 우울해지거나 날뛸 때 제대로 잡아줄 수 있는, 엔젤이 의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삼박자를 맞추는 조력자, 도일은 투덜이로서, 조언자로서 <엔젤>에 깊이와 무게를 실어준 역할을 했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웨슬리는 돌봐주는 사람인지 돌봐줘야 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방대한 지식으로 엔젤의 두 번째 날개가 되어 LA 뒷골목 괴물들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그런데 잠깐! 웨슬리의 말끔깔끔한 성격과 엔젤의 사근사근한 성격이 만나면, 완벽하게 게이 커플이다. 부디 보다가 착각하지 마시길. (히히히)

이상하게 버피와 엔젤 관련한 시리즈에서는 한국이 많이 등장한다. 뱀파이어 해결사 중 한국 여자가 있었다는 말도 (지나가면서) 한 적이 있는데, 아예 <엔젤>에서는 코리아타운이 등장한 적이 있다. 코리아타운의 마사지 업소는 괴물들이 와서 마사지 받고 쉬고 가는 곳이라는 설정에 보다가 방바닥을 치며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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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th Dec2001

[wallpaper] Christmas + Harry P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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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Dec2001

8ABX05 roadrunners 종말의 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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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th Dec2001

그녀, 박력의 금발 “버피와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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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아무런 생각이 없던 치어 리더, 버피는 어느 날 한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를 만난다. 그 아저씨 왈, 버피는 대대로 내려 온, 뱀파이어를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해결사라는 것이다. 이리도 황당한 일이 있나? 뱀파이어가 이 세상에 있다니? 결국 버피는 걱정없던 생활을 버리고 뱀파이어 퇴치에 나서게 된다. 그 뒷이야기가 MBC에서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황당무계한 제목으로 방영이 되었고, 현재 NTV에서 <버피와 뱀파이어>로 방영중이다. 그리고 OCN을 잘 뒤져보면 원작격인 영화 <뱀파이어 해결사>를 볼 수 있다.

TV판 <버피와 뱀파이어>는 극장판 <뱀파이어 해결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지난 학교에서 학교 체육관에 불질렀던 사건 때문에 버피의 어머니는 결국은 서니데일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간다. 그러나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갔다고 서니데일은 사실 지옥문 바로 위에 생긴 마을. 흡혈귀 및 온갖 괴물들은 그 지옥문에 이끌려 계속 침투해온다. 극장판이 조금 더 황당무계하고 덜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둘 다 매력점은 비슷하다. 경쾌하다는 것이다.

TV 시리즈 버피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파워 업! 사라 미셸 겔러이다. 보통 금발머리 여자는 맹해보인다는 공식(버피 극장판의 크리스티 스완슨도 여기선 못 벗어난다)을 온몸으로 깨 보인다. 제작자 조스 웨든이 ‘더 이상 금발머리 여자가 도망가는 것은 보기 싫어서’ 만들었다는 버피라는 캐릭터는 매우 화통하다. 사라 미셸 겔러는 이 드라마로 하이틴물의 여왕으로 등극했고, 또한 하이틴물의 전사로서 등극했다. 온몸이 병기인 최강 전사 <다크 엔젤>의 맥스 캐릭터도 버피에게서 빚을 진 것이 사실이다.

<버피와 뱀파이어>는 사실 굉장히 촌스럽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렇게 고전하다가도 몇 번 발차기로 혹은 아아아주 허술한 일격으로 악당을 때려눕히면 솔직히 약간 허무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무함과 비례한 촌스러움과 닭살도 다 넘어가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쾌활함과 박력이다. <버피와 뱀파이어>는 정말로 박력과 즐거움 그 자체다. 진짜 무슨 만화같은 전개도 서슴치 않고, 자신이 조악한 시리즈라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돈없어서 돈없다 티를 낸 시리즈 중에는 <사이버게임 Deadly Game>도 있었지만, 버피 시리즈처럼 돈없음을 박력으로 변환하는 힘은 그 어디서도 흔치 않다.

버피는 어머니 앞에서는 점잖은 척 의연한 척 다 자란 척이지만, 정작 자기 후견인 자일스 앞에서는 늘 어리광이다. 징징대는 사안은, 자신은 뱀파이어 해결사이지만 이전에 10대 학생이고, 사생활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시즌 1에서는 주로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시즌 2에서부터 뭔가 좀 방향이 달라진다. 또다른 뱀파이어 해결사가 등장하면서, 영혼을 지닌 뱀파이어 엔젤이 버피의 삶에 더욱 깊이 개입하면서, 그리고 엔젤과 버피의 사랑이 시리즈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얄팍함이 외려 장점이 되는 <버피와 뱀파이어>는 그 얄팍함 안에서도 깊이를 가지게 된다. (이런 모순이 가능한 것이 바로 버피 시리즈의 미덕이다)

그 미덕이란 바로 언제나 솔직 담백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솔로몬 가족 외계인들의 비정상적인 행태 뒤에는 ‘솔직함의 미덕이 동그란 빛을 발하듯이’ 버피 시리즈의 얄팍함 뒤에도 솔직 담백함이 자리잡고 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 개폼 잡기에 여념없다 – 버피와 친구들을 비롯하여 흡혈귀 엔젤, 스파이크, 하다 못해 끈적한 드루실라까지 폼을 재고 있는데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 그러나 고깝지는 않다. 왜냐면 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지한 것뿐이므로.

게다가 특수성보다는 오히려 시청자가 동화될 요소를 더 갖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흡혈귀 스파이크는 완전 악당을 자처하지만 툴툴대는 십대망아지 성향을 보인다(그래서 나이 200살 넘게 먹어놓고도 버피 어머니한테만은 꼼짝을 못한다). 인물을 잘 쓰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바로 코델리아다. 가장 도움 안 되어야 할 왕공주 캐릭터 코델리아도 당당히 주연명단에 올라가 있으며, 실제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등 공신이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얄팍해 보이는 이야기임에도, 모든 장르를 다 종횡무진 누비며 인물들 간에 넘치는 박력이 시청자에게까지 전염된다. 그래서 버피 시리즈를 보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시청자가 기분이 ‘째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이틴 로맨스부터 호러물 코믹물 모두를 거침없이 망라하는 버피 이야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보고 싶은 에피소드는 뮤지컬 버전! ^^ 아참, 버피 시리즈의 스핀오프가 생겼다. 바로 <엔젤>. 버피와 헤어진 엔젤은 LA로 가서 사설탐정을 하며 인간을 구원하려 한다. 여자는 뱀파이어 해결사. 남자는 인간 해결사!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다.

15th Dec2001

아니타 로딕 “영적인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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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th Dec2001

8ABX04 patience 박쥐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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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rd Dec2001

지구인? 그 야만인들? “스타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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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영화가 드라마화되었거나, 드라마를 영화화했거나 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나인 투 파이브>, <스타트렉>, <엑스파일>, <아담스 패밀리>, <로빈슨 가족 /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등. 이 대열에 <스타게이트>가 합류했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단세포 감독 롤란드 에머리히의 작품으로, 스타게이트라는 인위적 웜홀을 통해서 다른 행성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TV 시리즈로서 영화에게 크게 밀리는 것이 있다면, 제작비의 규모이다. ‘영화화가 되면 화면도 커지고 옷도 커지고 구두도 커지죠’라는 데이빗 두코브니의 명언을 뒤집어서만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영화 <스타게이트>가 블럭버스터 SF라는 점을 감안할 때 TV 시리즈로서 <스타게이트>는 누가 뭐래도 값싼 티가 난다는 것이 좀 문제다. 배우가 바뀐 것도 문제라면 문제. 커트 러셀은 리차드 딘 앤더슨(이건 만세)으로, 제임스 스페이더는 마이클 생크스라는 처음 듣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배우 말고도 TV 시리즈로 이전하면서, 포석도 조금 바뀌었다. 우선은 스타게이트 자체가 각 행성마다 존재하고, 좌표를 알면 여러 행성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적은 가우울드라는 유충이다.(또 숙주냐!) 우주를 정복하려는 가우울드, 즉 아포피스가 등장하고, 스타게이트를 접수한 미군은 아예 정찰팀을 구성하여 아포피스를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행성을 탐색하는 목적아래 다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전 멤버 잭 오닐과 다니엘 잭슨에 사만다 카터와 아포피스에게 등을 돌린 외계인 틸크가 합류한다. <스타트렉>이 우주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닌다면, TV 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웜홀을 통해서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것이다.

영화 <스타게이트>가 상당히 단세포적으로 보이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롤란드 에머리히의 못말리는 특징 – 이 세상엔 나쁜놈 아니면 좋은놈 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TV 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어쩔 수 없이 이 점을 물려받아 ‘아포피스=나쁜놈=격퇴 대상’을 기치로 내세우고 모든 외계 행성인들이 영어를 한다는 무식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이 무식함을 상쇄한다. 수많은 행성을 다니면서, 이들은 자기들 편을 찾는다. 그러면서 수많은 ‘문화’와 ‘문명’을 접하게 된다. 군사기지의 교두보를 만들고 상대를 교화하려는 이들의 목적은 TV 시리즈다운 엉성함 덕분에 불쾌감을 유발하는데 – 시즌 1의 3편까지는 확실하게 그렇다 – 점점 방문하는 행성이 늘면서 ‘교화’와 ‘회유’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면 오히려 역전이 된다. 특히나 요정처럼 생긴 주제에 최첨단 무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녹스 종족과, 기껏 목숨을 구해줬더니 ‘야만인들이 구해줬다’며 투덜거리는 톨란 행성 사람들은, 우주까지 나아갔으니 우리는 많이 발전했다는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버린다.

지구만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외계인들은 지구인보다 우월한가, 열등한가? TV 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이 세상엔 수많은 외계인이 있다고 답한다. 우리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보다 나을 수 있다. 이것은 유연한 사고방식의 출발선이다. 우리 자신의 시야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한다 – 우주로까지 발을 넓힌 인간은 과연 영역을 넓혔다고 시야를 넓힌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우리의 가슴은 머리의 발전속도를 못 쫓아가곤 한다. 인간에게는 수천 년의 시간이 어느 종족에게는 그냥 단지 기다리기에 좀 긴 시간일 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에겐 잊혀진 역사책의 한 줄 사연이 어느 한 존재에게는 인내와 기다림과 슬픔을 의미하기도 한다. ‘라자루스의 비밀’에서 한 외계인은 아픔이라는 개념을 파고들어가다가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죽음이란 다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은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다. 죽음의 의미를 통해 삶을 얻는 것이다. 오닐과 카터가 우주 미아가 되어버린 에피소드 ‘에니그마’는 아문센 일행의 불행한 최후를 연상시키며 인간의 시야가 반드시 정복한 영역과는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정말로 원주민의 씨를 말려버린 미국에서 만든 드라마일까?

TV <스타게이트>는 물량으로 승부를 걸기 보다는 감수성에 호소를 하고는 한다.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면서 포부만을 넓게 가지지 말고 마음도 함께 열어달라고 요청한다. ‘왔노라, 보았노라’는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반드시 우리의 기준이 절대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늘 심각하기만 한가. 그건 아니다. 보다가 그대로 엎어진 에피소드 하나 소개. ‘헤더, 관능의 여신’ 에피소드. 헤더 여신이 스타게이트 기지에 나타나자 남자들은 헤더 여신에게 홀라당발라당 반해 버리고, 몇 명 안되는 여자들은 페로몬에 영향을 안 받은 틸크와 함께 맞서야 한다. 이건 여자들과 게이여, 연합하라! 이던가…

씨네21 해외 TV시리즈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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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Dec2001

스노우캣 “스노우캣의 혼자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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