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Feb2002

인간이 어떻게 변하니? “프리텐더 제로드”

by worrynet

이 세상에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 그렇다면 단지 그 음모는 정부만이 저지르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개개인을 우습게 보는 거대한 힘은 정부만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모여 있는 존재라면 어디든지 가능하다.

<프리텐더 제로드(Pretender)>는 말 그대로 ‘프리텐더’, 다른 사람인 척을 하며 어디든지 잠입할 수 있는 주인공 ‘제로드’를 둘러싼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 때문에 ‘센터’라는 곳에 붙잡혀서 프리텐더로 교육을 받아온 제로드는 어른이 되자 센터를 탈출한다. 제로드를 다시 붙잡으려는 센터와 도망치는 제로드의 고양이와 쥐 게임, 그리고 제로드가 프리텐더인 자기 재능을 이용해서 어려움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 이 두 축이 주요 플롯이다. 도망자이면서 남을 도와준다 – <도망자>와 플롯은 같지만 제로드는 킴블 박사하고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킴블 박사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도망친다. 그러나 제로드는 거대한 자본력과 권력, 권모술수가 판치는 비밀기관에서 이용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을 치는 것이다.

<프리텐더 제로드>의 변신은 상당히 남다르다. 초능력으로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나 습성같은 내면과 속을 모방함으로서 남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의사가 필요한 자리엔 의사로 변신, 소방관이 되어야 할 때는 소방관이 되어 현장에 잠입해서 증거를 물색하는 것이다. 제로드의 무기는 떡대나 주먹이 아니라 명석한 두뇌와 철저한 모방능력이다. 이에 비해, 어릴 때부터 센터에서 같이 자란 친구로서, 커서는 수색자로서 대립하게 되는 파커는 실제 실력과 별개인 자기증명을 해야 한다는 히스테리와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은근히 서로 정을 떼지 못하는 입지에 있다. 적 혹은 동지, 친구 혹은 애인,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게 대립하는 이 둘은 센터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쫓고 쫓기는 추적에 남녀간의 긴장감까지 더 한다.

제로드는 전국을 누비며 도망다니느라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바쁠 텐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꼭 도와주려고 한다. 이 세상엔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음모와 비리가 존재한다는 90년대의 음모론의 먹구름 속에서도 <프리텐더 제로드>는 시선을 소시민으로서 소박하게 지니는 착한 인간성에 중심을 둔다.

보통 소시민들은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다가 사고를 당하고서야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는 복잡한 절차와 규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쉬운 예로 경찰서 한 번 끌려가고 나던가 혹은 어느날 갑자기 자기 신용정보가 팔렸다는 걸 알고 나서야, 이를 대처하려면 무슨 법이 그렇게 많고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몸으로 부딪치게 된다. 당하고 나서야 자기가 이런 일에 대해 본래 알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아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것에 빠삭한 사람이 있으면 나의 억울한 처지를 금방 도와줄텐데, 하게 된다. 제로드는 이러한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과도 같은 존재이다. 의사에서 카 레이서, 심지어 제비족까지 어느 것 하나 변신 못하는 것이 없다.

제로드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넉 자로 말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제로드는 사건을 파악한 후 잠입하여, 범죄를 저지른 자를 똑같은 상황으로 몰아넣고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인간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인간은 내면에는 선한 면이 있고, 죄악을 저지른 자에서 당하는 자로 입장이 전도되면 악당이어도 잘못을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로드는 보기보다 상당히 낙관적인 인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릴적 상처도 많고 안정된 직업도 없고 마음 둘 곳도 (당연히) 없는 떠돌이 천재이면서도 비뚤어지지 않는다. 센터에서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제로드가 남을 돕는 것은 ‘자기의 부족한 면을 보상받겠다’는 심리로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제로드는 정말 진심으로 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보고 싶기 때문에, 인간이란 본래 선하기 때문에 남을 괴롭히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세상을 도우면서 자기 역시 모르던 세상을 배워나간다고 생각한다. 산도적(?) 같은 외모와는 전혀 딴판인 천사같은 마음씨다. 제로드 자신이 단순하고 정의롭고 세상을 편하게 대하는 것이다. 세상을 평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주인공들과는 상당히 다른 편이다.

이 점을 아주 명석하게 꿰뚫은 에피소드는 다름아니라 <프로파일러(Profiler)>와 크로스오버를 한 시즌 3의 에피소드 ‘게임오버(End Game)’인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제로드는 첫눈에 샘 워터스가 남들 못 보는 것을 보는 이상한 여자라는 것을 눈치채고, 명석한 심리분석가 샘 워터스는 사탕만 물고 사는 제로드를 보고서 즉각적으로 ‘불안정해야 하는데도 멀쩡히 남만 돕고 잘 사는’ 희한한 남자라고 꿰뚫어 본다. 하하하. 둘 다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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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rd Feb2002

8ABX08 per manum 외계인 대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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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wait!

“Never give up on a miracle.”

John… it’s your coffee!

15th Feb2002

8ABX13 medusa 메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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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th Feb2002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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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h Feb2002

열번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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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짱 얼짱 코코아군

순둥이 잭

코코아의 발바닥

코오 코코아

04th Feb2002

지상파 외화 핍박시대

by worrynet

언제부터인가, <엑스파일>이라는 드라마는 우리나라 지상파에서 방영하는 외화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 누가 시켜준 것도 아니지만, 의례 ‘월요일은 엑스파일 하는 날’이 되었고, 사람들은 의례 재미있는 외화, 하면 <엑스파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2002년. 나는 매우 불안하다. 정말로 <엑스파일>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외화 사정을 온 몸으로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열풍 이후로 점점 외화 시리즈는 11시 심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예 12시 이후로 편성이 되어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청률 상위권은 국내 드라마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때로 외화는 인기가 하락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게 단정을 내릴 수 없다.

한마디로, 외화의 인기가 줄어든 것은 애시당초 경쟁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광고에 총력을 다 하며 프라임타임이라는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를 장악한다. 그러나 외화 시리즈는 밤 12시나 새벽 1시, 혹은 토요일 낮에 방영되는 것이 보통이며, 예고도 없이 종영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거의 제대로 시간을 맞춰 방영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비교가 가능이나 할까?

sbs의 <프로파일러>는 심지어 첫 방송을 25분을 어떠한 사전고지 없이 늦춰 방영을 시작했으며, 그 이후도 큰 차이점이 없었다. <엑스파일>은 1월 18일부터 또다시 12시 25분으로 늦춰졌다. 새벽 0시가 편성시간이라고 KBS 편성정책부에서는 주장을 하지만, 주간편성부에서는 분명히 편성정책부에서 0시 25분으로 내려보냈다고 주장을 한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거의 1년에 가깝게 시청자들이 시간을 당겨달라고 주장을 한 드라마를 한달 만에 도로 30분 가까이 밀어내는 것을 결정하는데, 그 저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모든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모두들 ‘외화는 인기가 없다’라고 미리 규정을 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맞춰놓기 때문이다.

TNS 미디어 코리아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지상파 밤 12시대의 프로그램 중, 시청률 10% 이상을 기록하며 주간시청률 20위 권에 드는 프로그램은 단 한편 이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파일>은 시청률이 낮다는 평가를 들으며 가장 황금요일인 금요일에 넣은 것을 감사하라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교육계가 1등만 선호하고 2등 이하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것이 본래 한국인의 습성인가보다 –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이것 역시 설명 가능하다. ‘외화는 인기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밤 12시가 넘게 하는 프로그램이 10%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아예 없는 일이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MBC에서 방영하는 <과학수사대 CSI> 역시 사정은 다른 곳과 다르지 않다. 아무런 이유없이 일요일 낮에서 토요일 낮으로 이사갔다. 수사물에 호기심 많을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에게 보지 말라는 뜻과 동일하다. 심지어 MBC 경우는 그 밥에 그 나물 성우진 편성으로 다른 외화에까지 ‘더빙하니 원판을 망친다’라는 욕까지 먹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아니다. <엑스파일>이 첫 방송되던 94년의 10시 50분이라는 시간은 지금의 11시 50분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11시가 황금시간대로 떠오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94년부터 2002년까지 8년 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인식을 꾸준히 확고하게 지닌 드라마는 흔치않다는 것을 지상파 방송국들은 인정하지 않으며, 특히나 외화는 양질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양질의 드라마가 탄생하려면 양질의 편성이 함께 만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외화 시리즈에게만은 거부한다. MBC는 <버피와 뱀파이어>를 새벽 1시에 편성함으로서 <엑스파일>에 못지 않을 매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고, sbs는 시즌 3을 포기해버림으로서, 이미지 쇄신 기회를 포기했고, KBS는 이 두 방송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 하고 있다.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의 손자이며 공동저자인 손빈의 이야기. 전차경주 내기를 좋아하는 영주가 번번이 내기에 실패하자, 손빈이 이를 분석해서(투자 애널라이즈?) 알려줬다. 1등 마차와 1등 마차를 붙이지 말고, 1등 마차에는 3등을, 2등에는 1등을, 3등엔 2등을 붙여 경쟁을 시켜라. 그렇게 되면 절대 손해보지 않고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괜히 <손자병법>이 ‘병법(兵法)’이 아닌 것이다. 지상파 방송국들이 질을 안 가리고 시청률에 목을 매기로 결정했다면,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질을 안 가린다는 말은 무식해지란 말이 아니라 정말 영악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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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Feb2002

[wallpaper] Please be my Valentine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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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Feb2002

[wallpaper] Please be my Valentin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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