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Mar2002

~카더라의 도덕 “논픽션 시네마”

by worrynet

다큐멘타리 채널 Q채널의 <논픽션 시네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만을 골라서 보여주는 시간이다. 제작사도 배급사도 소재도 공통점이 거의 없다. 오직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온갖 엽기적 사건부터 감동 스토리, 귀신나오는 이야기, 억장 무너지는 슬픈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논픽션 시네마>는 완전히 별개의 영화를 논픽션이라는 테마로 엮은, 쉽게 말해 Q채널 문고판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논픽션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다큐멘타리이건, 드라마이건 이미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이므로 왜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는가,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고 선정주의로 흐르게 될 공산이 높다. 아무리 엽기적 장면이 등장해도 실제 그랬으니까,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이 사건을 접하는 제작진의 자세이다. 게다가 ‘시네마’. 드라마로서 픽션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제작진이 어느 점에 더 중점을 두고 해석했는가에 대한 책임의식이 확실히 강조가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논픽션 시네마>는 드라마로서의 비중이 크고 시청자에게 이 사건의 전모를 보여준다, 보다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서 바라본다,는 의견제시의 자세가 강하다.

이러한 제작자의 현실 해석을 더 중시하는 제작풍토가 오히려 논픽션적 성격을 강화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 <그녀들의 전쟁(For Their Own Good)>은, 한 염색공장의 여자 직공들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하고 곧이어 공장폐쇄로 실직에 놓이는 상황을 냉철하게 그린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을 상사와 노조와 남편들에게 하나하나 야금야금 빼앗기는 과정은 마치 칼에 베이는 듯 쓰라리다. 이 피끓는 분노와 각성은 어떠한 다큐멘타리도 뉴스도 제대로 해 내지 못했던 일이다. 철저한 분석력과 냉철함. 제작진은 고난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승리라 하기엔 흘린 피와 눈물이 너무 많다. <논픽션 시네마>의 몇몇 영화들은 신변잡기적이고 선정주의에 기반한 심심풀이 땅콩 작품도 꽤 되지만, <그녀들의 전쟁>같이 논픽션을 다룬 영화들의 진수가 있기에 존재가치를 상호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컴필레이션 앨범’인 <논픽션 시네마>가 시사하는 의미는 단지 논픽션의 감동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논픽션 기반 드라마나 다큐멘타리와 비교해 볼 때, 제작진의 자세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변잡기적 다큐멘타리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다큐 드라마등은 오로지 ‘~카더라’에 의존해서 이야기 당사자를 무조건 불쌍한 표본이나 선정적인 시각의 눈요기로 만들기가 일쑤이다. 센세이셔널한 소재를 보여주고 나서 ‘이러면 사회적으로 안됩니다’하는 윤리교과서만도 못한 말로 마무리를 짓는 그 수많은 다큐멘타리도 모자랐던 것이 틀림없다. 부부가 어쩌다가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려주겠다는 구실로 불륜, 마약, 폭력, 청소년 성범죄, 동성애 등을 드라마적 구성도 허술하게 70분이나 싫컷 ‘보여주고’ 나서는, 법률적 상담은커녕 ‘둘이서 잘 다독여 보시죠’하고 자기들은 발을 싹 빼고, 700 전화서비스로 이혼여부를 심판하라고 하는 막가파까지 등장했다. 그 자극적인 장면들의 존재 이유는 증발되어버린 것이다. 소재로서의 논픽션은 핑계거리가 아니다. 핑계로 등장한 논픽션은 선정성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특히나 드라마로서 논리적 유기적 구성도 갖추지 못했을 때는 이미 드라마도 아니다. 쓰레기다. 전파낭비다.

다큐멘타리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소재의 선정성,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어느 선까지 지킬 것이냐는 제작진의 자세는 제작진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또한 시청자 역시 ‘이게 진짜 사실이더라’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면, 아무리 내용상 허점이 있어도 관용성이 생기게 된다. 허구와 달리 현실은 논리적 결함도 함께 포함하거나 혹은 설명 불가능하게 유기성을 잃는 지점이 반드시 생긴다는 암묵적 결속이다. 선정주의와 암묵적 결속을 응용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타리 드라마이다. 그리고 당사자를 인간적으로 비하하지 않고 존엄을 표현하며, 드라마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작품의 질을 보장해준다.

그 점에서 <논픽션 시네마>는 상당히 좋은 표본이다. <논픽션 시네마>를 편집음반으로 치자면 아주 좋은 편집음반이다. 문고판으로 치자면 A급이다. 어떤 때는 웃음을, 어떤 때는 분노와 각성을,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인간 조소의 경지를 종횡무진 누빈다. 가끔가다 대책없는 감상주의와 선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존재 의의가 의심스러운 작품도 있지만, 가끔이라면 불량식품을 먹어도 상관없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불량식품 덕에 논픽션을 다루는 픽션의 정수를 찾아내는 기쁨까지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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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Mar2002

8ABX17 empedocles 악마의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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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the fa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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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th Mar2002

8ABX18 three words 죽음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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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 Skinman

Scully: Mulder, I AM pregnant!
Mulder: Carter, I’m not a Vietnam Sold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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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th Mar2002

케빈 크로슬리 – 홀런드 “북유럽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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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th Mar2002

X파일은 가라, 진실은 내 손 안에 “CSI 과학수사대”

by worrynet

“<엑스 파일>은 이제 한 시대의 끝부분에 서 있습니다. <과학수사대 CSI>는 출발선에 서 있지요. <엑스 파일>은 ‘만일?’ 이라는 명제를 도출합니다. 비행접시가 정말 있는가? 누가 알겠어요? 모든 것이 애매모호합니다. 그러나 우리 쇼는 사실을 다룹니다. <서바이버>같은 게 아닙니다. <과학수사대 CSI>는 진짜 사실을 다루는 드라마입니다.” (윌리엄 패터슨, USA 위크엔드 인터뷰)

<과학수사대 CSI>는 확실히 새시대의 드라마다. 피도 적당히 터지고, 인물들도 적당한 수로 나오고, 연령층도 다양하고, 액션도 있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던져주는 실마리가 어떻게 들어맞을까 생각하는 동안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나간다. 그 재미는 순전히 한 10년 정도 잊어버리고 있던 <형사 콜롬보>나 <제시카의 추리극장> 등에서 맛볼 수 있었던 퍼즐맞추기의 재미이다. 80년대 복고로 다시 돌아오는 현상? 물론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 그러나 모든 복고의 원칙, 이전 것을 가져와서 새로워 보이도록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과학수사대 CSI>는 추리력에 한 가지를 더 한다. 정밀한 과학적 절차. 단지 머리로 꿰어 맞추는 게 아니라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사건 현장 조사반(Crime Scene Investigation)’ 약어로 CSI. 길 그리섬이 이끄는 라스베가스 과학수사 심야수사반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이다. 사건에 사건이 벌어지는 라스베가스. 모든 사건 해결의 기초 열쇠는 경찰도 FBI도 아니라 바로 현장을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이들이 발견해 낸 증거가 있어야만 어떤 것이 사실이며 진실인지, 범죄를 누가 저질렀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했다해서 화제를 모았지만, 사실 <과학수사대 CSI>는 역시 제작자이자 그리섬 역의 윌리엄 패터슨 그 자체이다. 윌리엄 패터슨은 제작자로서 이 드라마를, 자기 자신을 어떻게 광고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그 누가 따지고 들어도 바늘 하나 찌를 수 없이 치밀한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엑스 파일>이 사람들한테 퍼즐을 확 던져버려 알아서 맞춰보라고 한다면, <과학수사대 CSI>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퍼즐을 맞춰 나갈 것인지 잘 보라는 서비스가 강하다. 치밀한 퍼즐맞추기에 모든 것을 거는 <과학수사대 CSI>의 메말라보이는 ‘하드보일드’적인 성향은 추리극의 버전업으로 보인다. <과학수사대 CSI>는 현실에 발붙이는 가장 기초적인 사안,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장 사실적이고 진실한 결론을 얻는 과정을 서스펜스로 만들어 나간다. 진실은 애매모호함이 아니다. 논란거리도 아니며,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과학수사대 CSI>를 상징하는 말은 ‘진실은 저 너머에’가 아니라 ‘진실은 우리가 밝혀낸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다루는 <과학수사대 CSI>는 현실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현실이 아니라 저게 현실이겠거니, 하는 ‘도식’을 맞춰나간다. <과학수사대 CSI>가 2000년대 미국이라는 새 시대를 대표한다는 말은 단지 제작자의 뻥 들어간 포부만이 아니라 사실이다. 911 테러 이후로 미국은 무언가 ‘확고한 것’을 원하게 되었고, 불확실한 현실에서 뭔가 확실한 것을 던져주는 존재를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확고히 해도 그 확고한 발언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독단적이며 일방적 진리임을 알 수 있다. <과학수사대 CSI>도 차원적으로는 그러한 위험성을 똑같이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이렇더라,라는 도식. 과학적 검증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엑스 파일>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10년 지나다보니 다들 둔감해져서 그렇지. 철저한 조사, 과학적 추리, 정확한 증명. 이 모든 것이 사건 해결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고, <과학수사대 CSI>가 이러한 정밀성에 있어 스위스 시계를 능가하는 치밀함을 기가막히게 선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계가 애초에 존재했다는 것은 기억해둘만한 사항이다. 그 한계야말로 <과학수사대 CSI>가 정말로 2000년대를 대표할 드라마가 될지 아닐지를 결정할 것이다.

철저한 현실성을 부르짖는 <과학수사대 CSI>가 현실감을 의외로 잃어버리는 지점이 있는데, ‘이야기’가 아니라 쭉쭉빵빵한 ‘구성원’, 배우들이다. 아무리 라스베가스가 배경이라고 해도 라스베가스의 인구 90%가 모델이 아니다. 아무리 정교한 추리력을 발산해도, 제작자이며 주인공인 그리섬 빼고 보기에 좋아 보이는 배우만 선발한 것이 너무 보인다. 초기 에피소드 중(초기라서 안심하고 스포일러 발산 중), 알고봤더니 한 여자가 산악가였다 – 예상치 못하게 그 여자가 혐의자다 – 팔이 내 손목보다도 가냘프고 여리여리한 여자가 돌벽을 타는 산악가였다고? 난 뜻밖의 범인 출현에 경악하기는커녕 그만 폭소를 터뜨렸다. 서비스 정신은 너무 과도하면 탈을 일으키는 법이었다.

( 윌리엄 패터슨 인터뷰를 찾아주신 분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02nd Mar2002

8ABX14 this is not happening 불가능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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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Mar200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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