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th Jun2002

9ABX04 hellbound 지옥특급

by worrynet

This situation reminds …. that time.

This situation reminds …. that time?

This situation reminds …. their time!

Off
28th Jun2002

9ABX08 trust no 1 아무도 믿지 마라

by worrynet


They’re watching

24th Jun2002

걸작드라마 핍박, “er”

by worrynet

캐치원(HBO로 바뀌기 전에)에서 월요일 10시에 처음으로 < er>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을 때, 정말로 행복 그 자체였고 신선함 그 자체였다. 행복한 월요일. < er>을 보고 채널을 곧장 돌리면 KBS에서 <엑스파일>을 볼 수 있었다. 치밀한 이야기, 수많은 재미난 사연들, 박진감 넘치는 전개…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 er>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바로 생과 사가 갈리는 상황에 부딪치면 소박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 er>의 배경무대는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의 응급실이다. 수술하러 위층을 올라가기도 하지만, 주무대는 응급실과 바로 앞의 길 건너 식당뿐이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자기들만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코믹한 사연에서부터 안타까운 사연,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부터 삶의 경이를 느끼는 순간까지,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감흥이 살아 숨쉰다.

현재 케이블에서 계속해서 해 주는 < er>은 시즌 1과 2이다. < er>의 정수이자 영혼과도 다름없는 시즌이다. 그 시즌에서 보여준 저력이 8년 9년을 지속하고 10년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상당수 의학 드라마가 의사와 의사의 관계에 치중하고, 환자는 단지 지나가는 손님으로만 치부했다면, < er>은 지나가는 환자에게 순간이라도 따듯한 애정을 보여준다. < er>에서는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인생부분에 중심이 있다. 의료보험이 될 수도 있고, 장기기증이 될 수도 있고, 죽음과 삶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 한정된 공간에서 한가지 인생으로 서로 반응을 일으키다보니 충돌하고 화합하고 토닥이는 것이다. 이게 < er>을 구성하는 진짜 느낌이고, 그래서 특유의 아련함과 감동이 있다. < er>의 화려함도 박진감도, 그린과 루이스의 고생담도, 카터와 벤튼의 실갱이도, 로스와 해서웨이의 사랑도, 사실 이 아련함과 감동이 있기에 배가된다.

이 뛰어난 드라마 < er>은 우리나라 지상파에선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SBS는 골프중계하며 맨날 시간도 제대로 안 지키고 방영한 것은 생각도 안하고 시청률을 핑계로 마구 시간대를 옮기다가 중단해버렸다. 놀랍게도 KBS가 < er>을 방영했으나 시즌 3은 건너뛰어 버리는 바람에 보던 시청자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시청률은 급락해서 밤 11시에 ‘2%’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수요일 밤 12시 20분으로 밀려났다. 외화 최후의 보루, KBS가 시간대 핍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 (< er>이 월요일 11시를 이때 계속 지켰다면 <엑스파일> 시즌 1, 7, 8, 9가 금요일 12시 30분에 방영될 확률은 낮았다) 그런데 < er>이 겪은 황당무계한 피해는 단지 시간대뿐만이 아니었다. SBS는 그날 그날의 우리말 성우진이 훌륭했다. 그런데 KBS에서 방영한 < er>의 수준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말도 안 되는 인물설정을 해 놓은 번역(남자 의사들은 성씨로 부르고 여자 의사들은 이름으로 부르기같은)과 무성의한 성우진(보조의사 지니의 남편과 애인은 성우가 같았다. 바람피우는 보람이 없었군..), 줄거리 전개를 무시하는 삭제로 이전에 보던 팬들마저 떨어져 나가게 해 버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몇몇 드라마가 < er>을 대놓고 베끼기 시작했다. <해바라기>까지는 그래도 메디컬 드라마를 가장한 삼각관계물이었지만, <메디컬 센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예 대놓고 < er>을 모사한 것이었다. 수준이 떨어질 뿐 비슷한 카메라워크, 비슷한 인물 설정, 비슷한 줄거리와 분위기, 심지어 음악은 아예 < er> 사운드트랙을 쓰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팬들은 표절이라는 말은 자제하고 너무 비슷하다고 주장했건만 <메디컬 센터>의 이창한 PD는 < er>을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고서 문제제기를 ‘마니아의 문화사대주의’로 몰아붙였다. 이쯤 되면 범죄다.(이 가공할 범죄는 <씨네21> 280호에 실려있다)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마저 없는 수치이자 폭력이다. 비겁한 자들이 바로 ‘헐리우드 액션’을 한다. 무릎 맞아놓고 얼굴 감싸고, 베껴놓은 것을 지적해주면 사대주의라고 몰아세운다.

< er>은 우리나라에서는 수난의 드라마다. 시즌을 건너뛰고, 충분한 홍보도 없고, 무단으로 방송시간이 변경되고, 엉망인 번역에 성우진은 더 나빠지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삭제당하고, 도둑놈이 외려 홍두깨 들고 설치는 일까지 당했다. 정말로 < er>같은 드라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드라마를 동시대에 만나 향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 세대에서 몇 편이나 되는 드라마가 감수성을 흔들며 삶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풀어놓는단 말인가? 이런 훌륭한 드라마가 왜 수모를 당하는가? 미국에서는 닥터 그린까지 응급실을 떠난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의 퇴장을 슬퍼할 기회조차 없다. 그것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화가 치민다. 한국의 < er>과 < er>의 팬들은 약자라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올곧고 솔직해서 당하는 것이다.

10th Jun2002

진흙판의 기싸움 “웨스트 윙”

by worrynet

영화도 영화지만, 연극도 한 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가 힘들다. 특히나 극장에 어둠이 쌓이고 나직하면서도 우렁찬 배우들의 호흡을 직접 느끼게 되면, 어떠한 특수효과도 따라가지 못할 현실감과 박진감에 중독이 되고 만다. 특히나 좋은 연극일수록 배우들이 뿜어내는 개인기뿐만 아니라, 서로간에 주고받는, 거의 치고받는 대사와 기(氣)의 교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감동이다. 솔직히 캐릭터들 간의 교류인지 배우들간의 교류인지 헛갈릴 경우도 많지만, 그러한 감정흐름을 따라잡는 재미는 서스펜스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미는 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장 안이 더웠나 추웠나, 그날따라 배우 컨디션이 어땠다던가 하는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응축을 만들어내기에, 배우와 일체감을 느끼는 감동은 크기에 비하면 횟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또 그러나 바뜨, 눈을 돌려 찾아보면 이 서스펜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바로 바보상자라는 TV가 느닷없이 감동의 신천지로 돌변하는 것이다. 케이블 및 위성 들어오는 곳에 사는 분들은 당장 지역방송국에 문의해서 쏟아지는 해외 TV 시리즈들을 만나보십시오. 정말 끝내줍니다! 외국산이라 뭐가 통하기나 할까남? 싶지만 TV 전파를 뚫고서 전달하는 배우/캐릭터들 간의 박력과 치고받기, 팽팽한 긴장감은 어두운 극장의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신비롭다. 특히나 좋은 배우에 좋은 각본, 그리고 원래 이야기 자체가 긴장감을 선사한다면, 금상첨화다. 부럽게도 미국에는 이런 요소를 갖춘 TV 시리즈가 정말로 많다. 농담이 아니다.

TV 시리즈 <웨스트 윙 (The West Wing)>은 처음에는 어딘가 껄끄러운 드라마이기는 하다. 워싱턴 정치계, 그것도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대통령을 하늘같이 모신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이라는 것 – 요즘같은 정치불신시대에는 환영을 잘 못 받는다. 특히나 FX 사업 등으로 해서 ‘미국 정치계=깡패’라는 등식이 성립해 있는 시기엔 더욱 더.

<웨스트 윙(The West Wing)>이 진실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것은 ‘사람들’이다. 정치계라는 판에 뛰어는 사람들 자체가 있고, 별나라에서 끼리끼리 노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고, 정치인과 일반인이라는 갭을 메꿔주고 그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는 연기자들이 있다. <웨스트 윙>의 배우들은 정말로 연극무대에 선 듯이 서로의 폐부를 찔러가며 말을 주고받는다. 카메라도 정말 정신없이 돌아가고, 주인공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메인 캐릭터만도 최소 9명이 있으며, 이 사람 저 사람 한꺼번에 떠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모든 사람들이 살벌정치계라는 배경 하에 서로 독설을 퍼붓고 심중을 떠보는 것 자체가 서스펜스를 만들고, 이 서스펜스의 진정한 근원은 배우 각 개인들이 내뿜는 연기력이다.

‘웨스트 윙’ – 백악관 서관. 비서실 간부들이 일하는 곳이다. 대통령, 상원위원, 언론담당 보좌수석, 차석, 대통령의 친구, 대통령의 식구, 대통령의 적, 그리고 지금까지 나열한 사람들의 비서들. 그 모든 사람들이 쏟아붓는 공력과 기, 압도당하는 게 즐거워질 정도로 배우들/인물들은 진짜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금만 제대로 물면 합법적으로 로비가 가능하고, 국민보다도 실권을 잡은 자들을 얼마나 포섭하느냐에 정권의 운명이 달린 나라 미국. 미국의 정치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가 어떻게든 정치권력을 어디까지 얼마나 장악하느냐하는 제로섬 게임을 벌인다. 사람 수는 한정되어있고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내 편을 따르는 머릿수를 상대방보다 늘리는 것이다.

이들이 매 상황상황을 넘겨가는 것은 오직 재기와 재능과 언변,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아무리 진흙탕 싸움을 벌여도, 이들의 싸움에서 사람을 잡아끄는 기가 느껴져서 함부로 눈을 뗄 수도 없다. 잘 싸우는 싸움은 보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된다. 때로 인간적 감동을 주려고 하긴 하는데, 이건 오히려 과잉으로 보이고, 주인공들이 극적 상황상황을 맞부딪쳐 나아가는 순간들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바쁘게 남 설득하고 살면서 인간적이 된다는 것이 진짜 불가능이니까(설득에는 필수불가결 협박이 따라다닌다).

<웨스트 윙>을 보다보면,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노는 동안 국민은 도대체 뭘 하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국민은 정치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다. 직접선거를 하는 우리나라만 해도 정치계와 민간인의 갭이 큰데, 간접선거인 미국은 오죽 더 할까? 인간적으로 보이는 제스처는 모두 거짓일 공산이 높고, 오히려 상황에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것이 인간적으로 보이는 세계. 이것이 정치세계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마지막 단락에 적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 –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정치계를 다룬 드라마니까 별 신경 안 쓰고 배우들의 호연을 즐기면 된다. 그러면 기 충전 90% 목표를 달성하며 <웨스트 윙>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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