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ABX12 scary monsters 나는 믿고 싶다
80년대와 발을 걸치던 시절, 케이블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지상파와 미군방송에서 방송하던 상당수가 진짜 가족을 다루는, 가족애를 중심으로 하는 내용이였다. 지상파는 케이블 출범 후에도 비슷했다. <코스비 가족 만세(The Cosby Show)>, <마가렛 조는 못말려(All-American Girl)>, <패밀리 타이즈(Family Ties)>, <풀 하우스(Full House)>, <아빠 뭐하세요?(Home Improvement)> 등등. 그러나 케이블 출범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 <프렌드(Friends)>, <내 사랑 캐롤라인(Caroline in the City)>, <엘렌(Ellen)> 등 도시 독신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그 후 가족을 다루는 시트콤은 아이가 없고 개를 키우는 (독신과 다름없는) 젊은 부부 이야기 <못말리는 부부(Mad about You)>나 유사가족 형태를 다루는 만화영화 <베베의 아이들(Bebe's Kids)>, 시대적 배경이 전혀 다른 <요절복통 70쇼(The 70's show)> 정도가 남거나 소개되자마자 도태되거나 고만고만한 인기를 얻는 선에 그쳤다. <못말리는 번디가족(Married... with Children)>이나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3rd Rock from the Sun)>, <말콤네 좀 말려줘(Malcolm in the Middle)> 등은 가족애를 다루기보다는 가족구성원을 다루는 ‘만화스러운 엽기쇼’ 비중이 상당히 높은 변형 가족 시트콤이다.
시추에이션 코메디의 기본 조건이 사소함을 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못말리는 번디가족>이 이 극단성의 선구적이자 최적표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레이 로마노의 코메디 <내 사랑 레이몬드(Everybody Loves Raymond)>는 정말로 평범 그 자체를 무기로 밀고 나간다. 금쪽같은 아들딸과 토끼같은 마누라를 데리고, 알콩달콩사는 신혼 시절은 애저녁에 지나간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나는 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사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바로 옆집 아버지와 어머니, 형은 매사에 끼여든다. 평범한 진퇴양난에 놓인 평범남의 고난사. 마누라의 시댁과 자기집의 거리만 조절하면 <내 사랑 레이몬드>는 마치 우리나라 시트콤을 보는 것만 같다.
‘80년대 후반에서 케이블 이전’까지의 주요관계는 부부와 자녀, 그 이웃과 친척이다. 하지만 <내 사랑 레이몬드>는 마치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주인공 위의 세대, ‘여자의 시댁’이 이야기 전체에서 중요한 맥락을 차지한다. <내 사랑 레이몬드>에서는 며느리를 딸의 입장으로 대한다. 일종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하지만 남은 남이다. <내 사랑 레이몬드>가 지금까지 소개가 된 ‘유사가족 시트콤’ 혹은 ‘가족 시트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사실성을 확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있다. 유사가족이라는 것이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실제 인생에서 일어나는 유사가족 형태를 시트콤의 핵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족이 물리적으로 너무 가까워서 벌어지는 트러블은 우리나라 드라마와 시트콤에서 상당수 등장하는 소재이다. 시트콤은 아니지만 김수현의 <내 사랑 누굴까>가 그 극단적 예로, 3대의 남자들과 남자들의 여자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들을 굵직한 사건의 기폭제로 삼는다. <내 사랑 레이몬드>가 바로 그런 유머를 발휘한다. 레이가 벌이는 말썽을 늘상 더 크게 만드는 것은 말썽 자체보다도 레이의 친족관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트러블이다.
다만 <내 사랑 누굴까>와 <내 사랑 레이몬드>의 차이점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과장을 많이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리고 결과는? <내 사랑 레이몬드>가 훨씬 과장이 없다. 물론 시트콤스러운 과장은 있다. 하지만 상당히 수선스럽고 고집불통인 레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동도 결국은 툭탁거리는 부모의 평범함에서 출발한다. 병적으로 질시의 시선을 동생 레이에게 날리는 로버트도 알고보면 과장스럽지가 않다. 추바카만한 키와 과묵함으로 레이를 압도하는 로버트는 때로 레이의 강박관념이 형상화된 허깨비로 보일 정도지만, 로버트의 망상에 가까울 자괴감은 독립못하는 캥거루족의 공포에서 단 두 발짝 정도 앞으로 나아간 모습이다. 그래서 레이네 집안의 가족애는 언제나 싸움을 유보해서 얻는 현실적인 평화를 얻고 끝난다.
사고를 일으키지만 현실적인 선에서 수습가능한 사고뭉치 레이몬드의 모습은 웃기기 위해선 물불을 안 가리는 다른 시트콤과는 사뭇 다르다. ‘푸하하’ 웃는 것이 아니라 ‘맞아 그렇군~ 킥킥’하는 웃음이 지배한다. 어눌한 레이의 유머를 따라가다보면 정말 제목 그대로 누구나 레이몬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바로 내 옆집 사람이니까. 내 옆집 사람이 죽일놈이 아닌 이상에야, 딱 남들만큼의 단점만 지닌 평범한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드라마는 인생과 다르다. 인생 안에는 코메디와 비극과 감동과 진지함과 비참함 모두가 공존한다. 드라마는 인생의 한 부분만을 떼어내서 재구성을 한다. 드라마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 목적성이 드라마의 장르를 결정한다. 드라마는 장르를 결정하고 출발한다. 만일 목적(장르, 주제)에 맞게 행동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에로물에서 야한 장면이 주로 나오고, 공포물에서 잔인한 장면이 주로 나오는 것이다.
MBC의 <여명의 눈동자> – 감동적인 철조망 너머 키스신이 등장한지 10년이 넘었고, 이제는 키스신은 보편화되어있으며 심심찮게 베드신을 볼 수 있다. 이제는 국내 드라마의 ‘베드신’이 슬슬 강도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데, 실제로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베드신의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 베드신의 존재이유와 그 강도가 그 드라마의 장르나 줄거리나 목적에 얼마나 합당하느냐이다.
SBS의 <여인천하>의 정난정과 윤원형의 ‘어화둥둥 섹스신’은 해설자가 나올 정도의 사실적 톤을 유지하려는 드라마와 과연 어울렸는가? MBC의 <고백>이 부부간 성의 담론을 하기 위해서 베드신을 넣었는가? 아니면 화제가 될 것 같아 넣었는가? KBS의 <부부클리닉>도 부부의 위기를 돌아보기 위해 불륜이 나오는가? 아니면 단순한 남의집 싸움 구경거리인가? 선정적 장면은 어느 목적에 따라 나왔으며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과 맞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드라마 자체의 품질까지 결정한다.
분명히 지상파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상파라는 특성상 모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등급제’이다. ‘몇 세 이하는 보호자의 지도를 요합니다’라는 이 문구는 사실 ‘몇 세 이하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경기를 일으키면 그것은 이 경고를 듣지 않은 보호자가 잘못한 것입니다’라는 상당히 삼엄한 말이다. 이 등급제는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에게 엄격한 책임감을 요구하는 제도이다. 시청자에게는 보호자로서 조신할 것을, 그리고 제작진에게는 제작 자체에서 확실한 목표와 대상을 설정할 것을.
시청률만 생각하면 목표의식이 없이 드라마를 만들게 되고, 그럴 때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이 드라마와는 상관없는 선정성이다. 그리고 이럴 때 말로만 번지르한 제작의도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선정성 논쟁에 대한 답변은 일정하다. ‘어찌되었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진짜 들어야 할 답변은 구체적 작품설명이다. 기획의도가 이런 것이었고, 내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 장면은 이런 앞뒤내용상 당연하다,라는 답변. 이유가 있어서 그런 장면이 적절하게 나왔다면 일부 시청자층에 부적절한 장면도 납득이 된다. 무조건 물의는 죄송한 것이 아니다. 등급제를 하지 않고 성인 대상의 내용이나 화면을 방영하는 것은 사과해야한다. 하지만 방송국 제작부나 심의부나 제일 중요한 것은 선정성의 강도가 아니라, 선정성의 (말이 된다면) 옥석을 가리는 판단력임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드라마 등급제는 이미 5월에 시행했는데 어느 방송국도 국내 제작 드라마에 한해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드라마 등급제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의 처벌은 올해 11월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