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Nov2002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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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예스!!!!!!!!!!!!!!!!!!!!!!

우리말의 감동이 밀려온다. 펄펄~.

뭐 마감에 시달린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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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th Nov2002

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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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워크샵을 보고 왔다.

으허.. 너무 재밌었다!

워낙에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러개 중에 하나만 나와도 좋아하는 편인데… 꽤 괜찮은 작품들이 여럿 나왔고, 그 중 3개 정도는 어디 출품하라고 싶을 정도였다. 애들 왜 이렇게 잘 하는 것이야!

으하… 근데 미용실 처자 이야기가 딱 내 스타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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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th Nov2002

[이대대학원신문] 발을 땅에 대지 않은 여자, 앨리 맥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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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의 사랑만들기(Ally McBeal)>는 슬랩스틱 코메디 드라마이다. 몸으로 웃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유치한 상상을 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앨리가 고객을 상대하는데 자신이 없어지자 갑자기 졸아들면서 의자가 커져버린다던가, 잘생긴 의뢰인을 만나자 귀를 도마뱀처럼 씁 핥는다던가. 주인공으로서는 물론이거니와 변호사로서의 품위는 약에 쓸래야 쓸 수 없는, 유치함의 극단을 달린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앨리의 매력이다.

앨리의 매력은 그 나이에도 유치함이나 어린애성이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사람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몇살쯤 먹었으면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나이를 지키지 않는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커리어를 쌓았지만, 한다는 짓이 결국 어떤 남자를 만나서 끝내주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초기에 미국에서 이 칠칠맞은 미니스커트의 변호사에게 페미니즘의 종말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앨리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인 양상이다. 싸워서 얻었으면 쉬어야 한다. 지위를 쟁취했으면 어깨에 힘 빼고 즐길 건 즐기는 것이 정상이다. <앨리의 사랑만들기>에서 앨리 뿐만 아니라 그 옆의 모든 조연들까지 사회적인 규제와 상관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즐긴다. 그들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함정이 존재한다. 괴벽스러움과 유치함 뒤에는 어떠한 도덕적 정당성이나 가치평가가 따라오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맥주 광고에서 드럼치는 여자가 땀을 닦으며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한다. 내숭떨고 앉았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땀흘리는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난 공주같이 비리비리한 년이 아니다’라는 비교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남을 깎아먹어 자기를 낮추거나 높이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괴벽이나 유치함이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것은 내숭이나 위선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특정인의 유치함과 순수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신적 테러, 환경재해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슬랩스틱 코메디는 괴짜들을 동원해서 진지해야할 문제를 아예 열외로 만들어버린다. 앨리의 엉뚱함이 오히려 여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회적 갈등 소지를 아예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슬랩스틱의 세계이니 지상의 법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앨리는 슬랩스틱을 통해 여자들에게 단순한 물리법칙만이 아니라 사회규칙까지도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 자체가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앨리를 탄생시킨 제작자 데이비드 켈리에게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앨리는 슬랩스틱의 발랄함을 주변 캐릭터에게 넘기고 치정극과 정신착란에 얽매인다. 앨리는 형사사건같이 살벌한 ‘진짜 세계’에는 안 나가고 민사사건같이 인간이 있는 세상에 남겠다고 한다. 그냥 피가 무서워서 형사사건을 안 한다면 모를까 민사사건이 낫다고? 인간사야말로 칼보다도 총보다도 더욱 사람을 잔인하게 갈라놓는다. 제작자는 그럴싸하자고 앨리를 인간정리에 대해 모르는 변호사로 만들었고, 그때부터 드라마는 물론 인간 앨리도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해버렸다. 눈앞의 일을 회피하느라 징징대는 어린애로도 모자라 단지 섹스와 환상에 둘러싸인 귀엽게 미친 여자로.

2002/11
이대 대학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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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th Nov2002

존 더글라스, 마크 올셰이커 “마음의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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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Nov2002

종이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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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어깨 아파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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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th Nov2002

그 남자 치밀하다 “마스터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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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치밀한 인간군상과 탄탄한 줄거리가 나오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만화에서 섬세한 캐릭터와 카리스마 넘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일본출판만화의 양적 질적 수준은 세계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럴 만한 가치와 품위가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와 카추시카 호쿠세이의 합작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으로 물오른 실력을 보여주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마스터 키튼>은 만화라고 부르면 너무 카테고리를 좁게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드라마 자체다. 특히나, 단막극 형식으로 큰 기둥줄거리와 단편으로 이루어진 것부터 미국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한 권이 한 시즌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화 <마스터 키튼>의 미덕은 어느 이야기 하나 허점이 없고, 섬세하고 치밀한 고증 아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런 것인가’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아예 만들지를 않는다.

이 <마스터 키튼>이 TV 만화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반영국인, 반일본인인 키튼이 보험 조사원으로서, 전직 군인으로서, 고고학자로서 벌이는 모험의 이야기가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다. 매드하우스에서 TV 시리즈화한 만화영화버전은 총 2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체도 약간 길어진 것 빼고는 나오키의 스타일과 매우 흡사하다. 에피소드 자체도 두뇌싸움 에피소드와 감동 에피소드 양쪽에 공들여 분배, 선택한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워낙 세계적인 소재를 잡은 것이 주효했던지, 방송을 타는 일본만화로서는 처음으로 주인공 이름이 일본인 그대로 등장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열두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밥을 굶는다고. 전직 SAS 요원, 현직 강사겸 보험조사원 키튼의 고민거리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하는 보험 조사원보다는 다뉴브강을 뒤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데, 강사 자리는 나지 않고 너무 뛰어난 보험 조사원으로만 활약하게 된다.

고고학이라는 점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생각나지만, 키튼은 역시 맥가이버의 후손이다. 꺼벙해 보이기 쉬운 외모에 촌철살인의 두뇌가 존재하고,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행복하게 살고싶어하는 소망을 지니고 소소한 것에 즐거워한다. 키튼의 부드러운 성품은 때로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때로는 지나친) 감상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삶에 대한 성찰과 아름다움이 이를 보상한다. 이야기 전체는 키튼의 머리와 가슴으로 나눌 수 있는 셈이다. 키튼의 삶 자체가 비정할 정도의 인간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하면서도 자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옆집 아저씨같은 외모에 생사가 갈리는 모험을 하고, 온갖 인간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도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는 키튼의 부조화는 오히려 우리 인간의 전체 모습이라는 조화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해서 키튼은 인생의 달인이 되어간다.

아쉬운 것은, 만화 <마스터 키튼>의 빠른 속도감이 만화영화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똑같다보니, 만화의 영화적인 컷 배열 방식이 돋보이는 레이아웃이 만화영화로 이전되면서 화면나열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화되었다. 일본만화가 초당 컷수가 느린만큼 드라마의 흐름 자체가 느려지고 만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만화영화 <마스터 키튼>은 딱 80년대 <맥가이버>의 속도이다. 90년대 말과 2000년에는 상대성 법칙에 의거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속도가 느리다보니 만화를 먼저 본 사람은 속이 터질 확률이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창동의 영화가 80년대 정서를 2002년에 똑같이 재현하다보니 구려지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만화영화 <마스터 키튼>은 사실 만화 <마스터 키튼>의 입문서로서는 아주 좋다. 속도가 느려서 문제지 ‘똑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의 치밀함과 고증은 살아있다. 원작 만화 자체가 워낙에 영화적인 줄거리와 스타일을 가졌기에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한번 드라마에 빠지면 몰입하게 된다.

투니버스는 때때로 <카우보이 비밥>, <보노보노> 등 원작과 비교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리말 버전을 내놓고는 하는데, 우리말판 <마스터 키튼>도 우리말 캐스팅 면에선 상위권에 해당한다. 만일 그림전개가 마음에 안 든다면 라디오드라마를 듣는 기분으로 (내용뿐만 아니라 대사도 거의 틀린 곳이 없기에) 봐도 좋다. 남을 압도하지 않지만 결코 압도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키튼의 목소리는 만화로서는 못 만나는 재미이다.

목소리에 얽힌 재미있는 뒷이야기. 원판 키튼을 맡은 이노우에 노리히로와 우리말판 키튼을 맡은 오세홍. 이 두 사람은 기가막히게 목소리가 똑같다. 게다가 우연찮게도 두 사람 다 드라마 < er>에서 똑같이 닥터 그린 역을 담당했다. (확인사살은 BS2에서 할 수 있다) < er>에 이어 <마스터 키튼>을 보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재미. 똑같이 스트레이트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이 두 배우의 다음 행보가 혹시 또 겹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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