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th Feb2003

[워리의 음악일기] 백 투 더 퓨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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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Feb2003

[워리의 갸우뚱] 와호장룡 vs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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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h Feb2003

최첨단의 표류 “공각기동대: S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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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공각기동대>는 극장판으로 만화영화화 되었고, 그 다음에 TV판으로 만화영화화 되었다. TV판은 극장판이 원작 팬들에게 부지기수로 원성을 들었던 것을 거의 콤플렉스 급으로 의식하고 있다. 부제부터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하하. 농담). <공각기동대>의 원작자 시로 마사무네는 극장판에서 못했던 것을 해보자는 듯이 최첨단 애니메이션기법을 총동원하여 원작과도, 극장판과도 사뭇 다른 미래를 구축해나가려 한다.

그러나 TV판 <공각기동대>는 최첨단 기법으로 화려한 내공을 선보이지만, 이전의 만화판도 영화판도 아닌 어정쩡한 가운데에서 헤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판의 팬들보다 원작만화의 팬들을 인식했다는 시로 마사무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느릿한 드라마의 톤은 원작보다는 극장판에 가깝다. 가장 어정쩡한 요소는 주인공 쿠사나기인데, 모습은 만화쪽에 가까운 편이고 행동거지는 극장판에 가깝다. 어찌나 안 어울리는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정도이다.

쿠사나기가 등장하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립글로스의 압박을 실현하는 입술과 그 극악한 패션감각을 보다보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쿠사나기를 디자인했을까하는 생각에 이야기가 눈에 안 들어온다. 남들은 폴라티셔츠를 입는 날씨에, 다른 여자들은 얌전한 무릎선 치마만 입고 다니는 와중에, 쿠사나기 혼자 화려하게 립글로스를 반짝이며 허벅지와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팬티만 입고 전뇌공간의 고뇌를 하고 다닌다.

2003년이라는 시대에 따라 발전한 그래픽기법이 총동원되었고, 원작자 시로 마사무네가 제작을 담당했고, <인랑>의 감독 카미야마 켄지가 덤벼들었고, <카우보이 비밥>의 칸노 요코가 음악을 맡은 이 지상최대의 최첨단 작전에 비해서 쿠사나기라는 드라마의 핵심은 한 마디로 ‘삐리리’하다.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립글로스 광채, 다른 캐릭터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극악한 빤쭈, 모두를 압도하는 과묵함. 발랄했던 원작과 진지한 극장판 양쪽을 포괄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나보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정적인 파워를 지니는 드라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쿠사나기를 왜 저렇게? 차라리 그 립글로스 압박이 어울리는 발랄소녀로 만들 것이지! 고뇌는 왜 하나?! 여주인공 외양에 혹해서 작품을 보는 – 한 줌도 안 되는 시청자층을 위해 드라마의 통일성을 망가뜨렸다고는 믿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잘 안 하는 이야기지만, 이 세상은 머리와 가슴이 같이 발전해야 진정한 최첨단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같이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그리고 기법과 감수성 모두 시대를 앞서 나가는 비전이 있어야한다. 이 감수성 면에서 TV판은 결정적으로 감점을 받는 것이다. 서로 평가가 엇갈린다 뿐이지 <공각기동대> 경우 만화판과 영화판은 독자적인 나름대로의 최첨단 세계를 서로 방향만 다를 뿐 통일성있게 구축하고 있다. 만화속의 발랄한 쿠사나기와 영화 속의 과묵한 쿠사나기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각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톤, 스타일로 묶인다. 이런 기본을 잊어버린 TV판 <공각기동대>는 모든 장점을 단점 하나에 함몰시켜버린다.

엄청난 자본, 뛰어난 연출력, 호소력있는 이야기, 최첨단 기법의 결정체 등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TV판 <공각기동대>는 자꾸 비교 격하만 당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단지 불운인가? 사실 자초한 셈이다. 아니면 시로 마사무네의 여자관이 그것 밖에 안 되던가. 경호한답시고 입은 A라인 스커트 경찰복은 순전히 날아다닐 때 팬티 보여주려고 입힌 것이 틀림없으니까. 매카닉이 발전한 만큼 옷도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 ‘빤쭈’는 기묘한 차별주의다. 왜 쿠사나기는 남들은 폴라티를 입고 다니는 날씨에 ‘빤쭈’만 입고 다니는가? 답은 ‘쿠사나기는 (몸이 기계니까) 추운 줄 모르니까’인 것이다. 똑같이 몸이 기계라는 바트가 뭘 입는지만 봐도 된다. 쿠사나기만 어정쩡한 것은 아니긴 하다. 드라마 자체가 기법 혹은 기술의 발전에 비해 마인드자체는 아직도 80년대에 머물러 있다.

TV판 <공각기동대>의 어정쩡함은 어찌나 심한지, 심지어 칸노 요코의 음악마저도 좋기는 하지만 남다르거나 새롭게 들리지는 않는다. 일본 극장판 음악과 스타일이 다른 음악을 선택하기는 했는데, 불행히도 미국판 <공각기동대> 엔딩 타이틀 “One Minute Warning”과 비슷한 스타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보면 자꾸 무뎌지는 것이 사람의 눈? 다행히 계속 보다보니 이야기의 아우라, 다시 말해 시로 마사무네의 전뇌공간은 여전히 매력있기 때문에 ‘빤쭈’와 ‘립글로스’를 가끔은 잊는데 성공했다. 이제 반정도 보았으니 나머지 반의 건투를 기원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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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th Feb2003

[책] 로마인 이야기 11권에서 : 아우렐리우스와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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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1권.
영화 “글라디에이터”와 실제 사실의 차이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발췌.
p 259

(2) 영화 “글라디에이터”에는 그날 승리에 수훈을 세운 막시무스 장군을 황제가 자기 막사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막판에 황제는 장군에게 콤모두스 대신 그대를 황제로 삼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전에 황제는 원하는 게 뭐냐고 장군에게 묻는다. 그러자 막시무스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영화 감독이야 주인공의 인간미를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면 그 대답만으로도 황제 부적격자로 단정했을 것이다.

…. 그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 11권에서 읽어보시길. 영화 속의 과도한 픽션을 짚어내는데, 이 부분이 가장 압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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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th Feb2003

줄리안 무어가 증말로 싫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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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오늘 또 하나를 발견했다.

일단. 줄리안 무어가 싫은 것은 – 줄리안 무어는 ‘자기것’이 없다. 한마디로 밸이 없다. 그냥 여기 출연하면 남들이 나를 좋게 보겠지?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알트만의 “숏 컷”을 보다 ‘저 늙은이가 마침내 노망났군’하고 보다 말았는데, 다행히 줄리안 무어 부분은 비켜갔다. 누가 무어 부분과 샤론 스톤의 노출을 비교했는데… 하나는 뭐고 하나는 예술이었던가? 정말 그 놈 미친놈이다. 샤론 스톤은 분명히 관음증을 만족하는 장면이라고 공개적으로 내놓았으나, 그 관음증 이면에는 성과 폭력의 관계가 있으며, 팜므 파탈의 치명적인 매력에 권력이 있어야 함을 웅변적으로 내놓았다. (한마디로 폴 바호벤이 괜찮은 넘이란 소리다) 그러나 알트만은 단지 늙은이가 팬티에 노망난 증세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입네 하고 늙은이의 서지도 못하는 물건을 만족시키려는 관음증에 불과하다.

무어가 ‘나오면 괜찮다는 평가를 무조건 보장받는’ 감독들 시키는 대로 밸도없이 나가는 것은 지 맘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나의 자존심을 깎아내린다. 돈 한푼 없는 여자가 포르노에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무어같이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년이 그딴짓을 하고 다니는 것은 정말 자존심에 타격이다. 같은 여자로서 인형만들어 바늘찌르고 싶다. 다리 몽둥이 좀 부러져서 영화 찍지 말라고.

나오면 칭찬받으려니 하고 단단히 착각한 “애수”는 그야말로 닐 조단 최고의 코메디였다. 본인이 의도했건 말건. 여하튼 닐 조단은 그 영화 찍고 깨달음을 얻어 “푸줏간 소년”을 만들었다.

… 무어의 최대 단점은 자기만의 고유색이 없다. “한니발”? 당연히 조디 포스터를 따라하려니,했더니 엉뚱하게도 데이나 스컬리를 따라했다. 열받았다. SNL에서 데이비드 두코브니와 나오면서 ‘스컬리’ 역을 한 것은 코메디려니 했는데, “한니발” 인터뷰에서 “여자 FBI들이 다 머리가 짧은 줄 아냐”하며 스컬리 야리는 것도 그냥 넘어갔는데, 이년이 대 놓고 남을 모사한다. 그래놓고 속편 만들자고 난리란다. 미친것.. “애수”? 여기선 캐릭터 자체가 색이 없는 경우다. 단지 주인공이 인생의 희비극에 얽히는 소도구일 뿐이다.

오늘 캐치온 플러스에서 “에볼루션”을. 그리고 오씨엔에서 “주니어”를 했다. 그리고 머리에 망치 다섯 대를 맞았다. 아아. 그래도 “레볼루션”에선 그 무어가 나온 캐릭터만은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런데! 세상에. “주니어”가 있었다. “주니어”에서 엠마 톰슨이 온 몸을 망가뜨려가며 열연한 ‘띨띨한 여자 과학자’가 있었다! 영국식 악센트까지 멍청함으로 바꿔내고, 넘어지기는 일쑤에, 신발에 휴지가 끼여도 모르고, 낭만적인 상황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도 당장 일 치르기에 주저함이 없는 여자 – 두 영화 제작자가 같은데, 같은 캐릭터를 사용한 제작자를 욕해야 할까, 아니면 남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그대로 모사한 년을 욕해야 할까? 둘 다 욕을 한다 해도 난 그 비율을 10%와 90%로 잡겠다.

연극을 해 보면 알지만 똑같은 대본을 가지고 있어도, 똑같은 대사를 하는 사람이라도 배우가 바뀌면 그 색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어디에 힘을 주느냐, 어리버리함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느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데 비슷한 캐릭터를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데 하는 짓이 똑같다?

진정한 캐릭터는 ‘이 사람이 아니면 이게 가능할까’를 각인시킨다. 물론, 다른 사람이 해도 되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욕하자는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했기에 그 역할에 생명과 영혼이 깃들게 되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진짜 배우다. 줄리안 무어가 그 점에서 연기 잘한다고 칭찬 받을 자격이 있나? 없다. 그여자가 출연한 모든 배역에서 줄리안 무어를 지워도, 하등 지장이 없다. 줄리안 무어 대신 파멜라 앤더슨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무어가 요즘 신났다. <세월/디 아워스>과 <천국에서 먼> 등으로 수상명단 오르고 난리났다. 아마도 무어는 배우들과 감독들 사이에선 인기 좋을 것이다. 뭘 해도 다 받아주고, 뭘 해도 다 해 주니까. 그렇게 거의 몸팔고 정신팔아서(정말 헐리우드는 비유법이건 진짜건 몸만 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신도 파는 구나) ‘나오면 상 탈 만한 영화’에 계속 출연해서 상 타게 생겼으니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내 입장에선 아마도 무어 본인은 그렇게 밸없이 사느라 5년 안에 상 못받으면 폐인되고, 10년 내로 상 몇개 받은 거 가지고 맨날 벗어제끼기나 하며 불행하게 살며 나같이 자기 핵심을 꿰뚫어보는 여자들 속이나 썩일 것이란 것만 보인다. 예전에 “보고 또 보고”라는 엽기적인 드라마를 기억하는지? 거기에 나오는 왕 내숭녀가 미국땅에 살아있다.

15th Feb2003

한혜연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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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Feb2003

이케가야 유우지 “뇌학습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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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t Feb2003

계미년 1월 1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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