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심리학관련 책 모음



앤드류님이 너무 잘 설명해주셨기에 두말하는 거 같아 영 찝찝하지만… 정말이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저렇게 공공에 피해입힌다. 특히나 자기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아예 그 가능성을 배제한 사람 경우에. 위 글이 사실조사에서 F를 기록한다는 것은 앤드류님께서 워낙 잘 정리해주셨기에 강추강추한다.
현재 전자팔찌와 화학적 거세형 얘기가 나오는데, 워리는 여전히 반대다. 이유는 저번과 같다. 문제해결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전자팔찌나 화학거세형은 매우 하수(下手)이기 때문이다. 전자팔찌와 화학적 거세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럴싸해보여서다. 한 칼에 뭔가 되는 것 처럼 보여서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전자팔찌 채우고 화학적 거세 약물을 투여한다고 한방에 근사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전자팔찌를 채우면 감시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자팔찌가 잘 작동되는지 점검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전자팔찌가 병원이나 기타 전자파에 영향받는 지역에서 어떤지 조사할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GPS 장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알아볼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전자팔찌를 실제 형량을 얼마나 받은 사람이 채울건지, 재범부터 채울건지 등의 기준을 세울 사람이 필요하다. 전자팔찌 자체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금방 약점을 찾아낼 가능성이 많다. 연쇄성범죄자는 권력상하관계를 귀신같이 알아채기 때문에, 그 자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서 감시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그럼 화학적 거세는? 호르몬제 투여는 정기적으로 해야한다. 주변에 갱년기 장애나 기타 호르몬 불균형으로 약 드시는 분들을 살펴보면 된다. 일주일이나 며칠마다 정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먹어야 한다. 그 약을 자발적으로 먹을 리가 없는데,그걸 누가 일일이 그 사람들 쫓아다니며 주사를 놓거나 약을 먹일 건가? 도시의 익명성으로 숨어버리면? 약국도 의사도 없는 시골로 숨어버리면?
근본적으로 화학적 거세는 효과가 없다. 성범죄자는 성욕에 의거해서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 기제가 완전히 다르다. 성관계에서 성욕을 충족하지 않고, 남들이 성적인 것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것을 통해 성욕을 충족한다. 불을 지르면서 성욕을 충족하고, 남을 총으로 칼로 죽이며 성욕을 충족하며,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으로 성욕을 충족한다. 하고나면 성행위만큼의 만족감이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욕은 결과에 가깝지 원인이 아니다. 성범죄자는 남한테 피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다. 그 심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화학적 요법은 의미가 없다. 성욕만 억제하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란 사고방식은 문제다.
가장 좋은 해결책이 뭐냐하면, 복창터지게도 느려터진 방법이 최고이다. 국가와 사회의 복지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다. 복지를 개선한다면 아이를 키우는 여건이 좋아진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소외되지도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랄 수 있다. 타인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도록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아동시기이다. 어린아이일 때, 나와 남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책임이 막중한지 알려주어야한다. 그 시기를 이미 놓쳐버린 사회에서 이미 저질러진 범죄만을 보고 범죄자 개인에 대한 이중처벌만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자팔찌와 화학물 이전에 사람들을 키워내야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아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실무를 보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성범죄와 연쇄범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인력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전자팔찌 백만개 들여와봤자 화학약물을 백만드럼 부어봤자 혈세낭비다.
현재 이미 발생한 범죄를 처리할 때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열받는 사태에 대해서는 … 정말로 할 말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인권을 따져야하는 것은, 미치고 펄쩍뛰게도 가해자란 놈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전반적인 인권을 따졌을 때 그놈 인권도 속하기 때문이다. 만일 가해자의 인권을 박멸해야한다고 주장하면 자신의 인권도 박멸해도 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미 파괴된 피해자의 인권은 뭐냐고? 그거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피해자를 위해 뭘 했나? 그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얼 노력했나? 이미 내가 속한 사회 자체가 피해자의 인권을 파괴되게 내버려뒀다. 아무리 공분해봤자 남의 일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한 다리 건너에 불과하다. 나도 그 점에서 ‘이 망할놈의 사회’적인 차원의 공범자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내가 부끄러워하지, 그놈의 인권을 저버리자는 말은 못 꺼낸다. 왜냐하면 내 인권을 내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인류보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가야한다는 절대명제 때문에 나는 범죄자의 인권을 해치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떤놈의 인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말이다.

사올 때 제 색깔 다 붙어있는 거 안 봤으면 본래 맞는 색 없는 줄 알겠다. -_-
근데 오늘 듣는 음악은 다 소프트에 멜랑콜리.

지하철 결혼식 소동이 엉뚱하게도 내 친구 셜럴러한테까지 미쳤다. 셜럴러에게 애도를 표하며 -_-;; 트랙백.
게릴라 연극이라는 말로 프란슈트그룹(맞게 읽었남?)과 호서대 연극동아리 지하철 연극하고 엮일 수는 없다. 프란슈트그룹의 행위예술은 분명히 플래시몹에 가깝다. (프란슈트그룹은 플래시몹의 즉흥성이 없고 특정 모임이 미리 준비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플래시몹은 주로 엉뚱한 행동을 함으로서 지켜보는 사람에게 이화현상을 일으킨다. 즉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행동이 실제 일어난다는 것에 놀라지만 그것이 실제라고 믿게 되지는 않는다. 호서대 연극동아리의 지하철 연극은 그냥 일반 연극을 아무 곳이나 골라 실연한 것 뿐이다. 연극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진짜로 알게끔 한 것이다. 이화와 몰입, 기반한 예술의 관념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실제 현장에서 예고없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둘이 같지 않다. 실연자의 철학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행위예술은 행위자와 관람자 사이의 교류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그 교류의 바탕은 행위자의 철학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실행하는가, 어떠한 반응이 나올지 미리 충분히 생각하고 고찰해 보고서 이를 실행하기로 했는가, 그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행했는가. 프란슈트그룹은 공연 후에 자기들이 연극을 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호서대 연극동아리는 연극이라는 말을 해야 했다.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관람객에게 이화효과를 내느냐, 아니면 전통연극의 몰입효과를 내느냐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들의 처신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 한 마디 안 한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국에 매스컴을 탔고, 내 친구는 서버가 닫혔다. ^^;
프란슈트그룹과 호서대 연극동아리를 뭉뚱그려 그냥 게릴라 연극이라고 부르는 것은 안이한 분류다. 어떠한 철학을 바탕으로 게릴라성 행위예술을 했는지를 파악한다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추신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어떤 행위예술이건 관람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선을 미리 예측하고 행동해야한다. 즉 결과적으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완전히 폭발시킬 정도로 할 것인지, 아니면 웃어 넘기는 정도로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만 해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의 최종평가까지 해당하는 것이다. 호서대 연극동아리는 그 자리에서만의 감정에만 충실했지 그 이후와 파급효과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럴 줄은 몰랐다,라고 얘기할 것이고 사실 그럴 줄 몰랐을 것 같기도 하지만 – 예술의 의미에서는 그럴 줄 몰랐던 것 까지도 책임지기를 요구한다는 잔인한 진리를 덧붙여야만 한다. 자기가 예상못한 범위까지도 책임을 지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학습이며 훈련이다. 특히나 예술에서는.
“당시 나는 그녀와 해마다 같이 잤거든요.”
“일 년에 한 번요?”
“아뇨. 연간으로요. 옛날부터.”
“하지만 그녀는 죽었잖아요!”
“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비양심적일 뿐이죠.”
그 동안의 범죄 경력에 대해 묻자 올슨이 대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교화 수단만 가지고도 책 5,6권은 쓸 겁니다. 아마 3부작은 될 거에요.”
그는 범죄는 저지르고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평범한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정신세계는 어지럽고 난해하다. 사이코패스는 행동과 마찬가지로 생각의 흐름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칙으로 규정하거나 제한하기 어렵다.
– 로버트 D. 헤어 <진단명: 사이코패스>. p. 201 – 202
[#M_ …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목사의 선문답이 생각나 그만 깔깔대고 웃어버렸다. | 글닫기 |
이제부터 여기에서 여기를 거쳐 다시 여기로 또다시 여기로 이어지는 그 목사를 둘러싼 여전히 한심한 상황을 담고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의 리플입니다. 한번 위의 예문과 비교해서 읽어보세요. 뭔가 서로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굵은 글씨는 제가 강조를 넣었습니다.
그런 식이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행’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교황 즉위식, 사민당, 축구팀 유니폼 같이 잘 안 변하는 걸 예로 들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인용하지도 않겠죠. 유학생들이 계약 결혼을 많이 한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美 이민국 자료는 인용해야죠. 그럼 똑같은 논리로 목사 두 어명이 신도랑 간통을 했으니까 목사들은 다 문란한 자들이라고 해도 괜찮겠군요.
기독교 운운…
드디어 나왔군요.
그간 잠잠하더니…
지금 그런 식으로 비교가 되나요?
우습네요. 그렇게 하는 것이 님들이 말하는 논리요?
가사 전문이니 확인해 보시오.
http://www.hani.co.kr/kisa/section-004004000/2005/12/004004000200512312137024.html
**** 2006-01-09 17:31
추천 4 | 리플 1
위 기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Die Welt지 2005년 12월 31일자에는 해당 기사가 없을 뿐더러(http://www.welt.de/data/2005/12/31/), “`권력의 색깔’인 붉은색이 공적인 영역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유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연합통신 기자의 ‘오버’죠. 그리고 그걸 곧이곧대로 인용하는 것도 안희환님의 오버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운운하는 것이 듣기 싫으면, 제대로된 근거를 가지고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제9계명이 뭔지는 아시겠죠?
제가 보기엔 생각의 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유행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요?
**** 2006-01-11 00:55
추천 5 | 리플 3
“생각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Die Welt지는 그런 보도 자체를 한 적이 없는 걸 어떻게 하죠?
목회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례는 적어도 안희환님이 유학생들이 계약 결혼해서 아이를 버린다고 주장한 사례보다 몇 배 많습니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64000/2000/021064000200009200326004.html
만약 안희환님 식으로 주장하면, 목사들이 신도들 강간하고 생긴 아이는 버린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안희환님이 유학생들을 근거없이 비난하는 것은 옳고, 반대로 목사들이 근거없이 비난받는 것은 부당합니까? 기독교를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고 기분나빠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예수께서 “비판받기 싫으면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걸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비판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서 그것으로 유행을 설명할 수 있지 않냐는 제 글에
이의를 제기하신 분이 있었고
다른 예를 인용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님. 기독교를 물고 늘어지는 것 맞습니다.
그런식으로 대비를 하시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곳에 자리잡으려는 안티기독교인이
논란에 빠진 나를 걸고 넘어지는 중인데
그 속에합류하시려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만약 선생이 어떤 글을 쓰면 그 선생이 속한 교사세게 전체를 걸고 넘어질 것입니까?
글은 글로써 다루어주시길 바랍니다.
**** 2006-01-11 19:49 추천 2 | 리플 1
몇 명의 목사 때문에 모든 목사들이 비난 받는 것은 부당한데, 왜 안희환님이 유학생들을 비방하는 것은 정당합니까?
한 분이 그 부분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인정을 했고 포스트를 수정했습니다.
답변이 되나 모르겠습니다.
**** 2006-01-12 19:33 추천 3 | 리플 1
그럼 “한국 목사들의 강간”이라는 제목으로 “목사들이 신도를 강간하고 아이를 낙태시킨다”라고 말한다음에 항의가 들어오면, “물론 일부 목사들이다”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로군요.
비비 꼬지 마십시요.
님은 지금 대화를 하자는 겁니까?
시비를 걸자는 겁니까?
님은 글 쓸 때 늘 완벽한가 봅니다.
**** 2006-01-13 03:38 추천 3 | 리플 1
”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아모스2:7)는 사람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마태복음7:2)이기에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하박국2:6)
그건 그렇고 목사들이 신도들에게 성폭력 가하고, 교회 돈 횡령하는 건 사실이죠? 물론 ‘일부’ 목사들 말입니다.
그들은 사악한 인간들이죠.
좋은 아침이구료.
생각의 차이, 생각의 차이…. 다시 봐도 구르네요. 너무 어이가 없어 코메디가 되고 만 뜬금없는 이 대답이 어찌나 반향이 컸던지… 네, 그 대목 읽자 이 생각이 도로 나더군요. 하지만 고맙게도 이젠 어처구니없음이 코메디가 되어 떠오르니 다행입니다.
그 목사께서 공식적으로 배째를 선언했으며 확실하게 부연설명도 했습니다. (리플 보시라 하려했더니 삭제되었군요) 어째 오래 참고 있다했더니 본색이 드러납니다. 이 글의 리플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논점일탈의 분명한 예시입니다. 요거의 리플은 자기 논리만이 우선시한다고 우겨대는 예고요. 남의 리플을 지우는 무례함에 대해 얘기했더니 자기 포스팅이 우선이라는 말은 참 -_- 자기 리플에 자기가 리플다는 모습도 참 안스럽더니만….
애시당초 자기 의사를 철회할 생각도 없었고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의사도 없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와서 적반하장으로 화를 냅니다. 목사의 직책을 가지고, 기자의 직책을 가지고, 블로거의 직책을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목사가 사이코패스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 진단은 엄격한 검사 후에 내리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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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 요즘 OCN에서 다시 아침마다 해 주고 있다. 실제 인물 사진. | 글닫기 |
요즘 OCN에서 다시 아침마다 해 주고 있다. 실제 인물 사진. KBS에서 수입 안 해주려나~ 맨 아래가 하우스(커피 들었음). 하우스부터 시계방향으로 체이스, 커디, 포어만, 윌슨, 카메론.
나혼자 목소리 가상 캐스팅 (이 짓 오랜만이군…)
하우스 – 오세홍 : 얼마전 <스튜어트 리틀>의 리틀 아빠(배우가 같다. 휴 로리)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사실 성격 드러운 매력에서 오세홍 아저씨를 따라갈 사람이 드물다…. (으응? ;;;)
윌슨 – 정훈석 : 부드러운 미소년 -> 미청년 -> 미중년 계보를 보장해야하고 하우스에 절대 지지 않는 능구렁이 면도 같이 있어야 한다. (사실 보좌 이미지로 딱인 이원준 오라버니를 하려다가 자꾸 <도전 골든벨> 생각이 나서 -_-;;;)
병원장 커디 – 성병숙 : 이건 이견의 여지가 없으리라 보고… 하우스를 마음만 먹으면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성병숙 = <미션 특급>의 국장마마)
체이스 – 김우정 : 그냥 보기엔 빈틈있어 보이지만 속이 알찬 캐릭터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포어만 – 한호웅 : 무난할까 싶어서 -_-;;;
카메론 – 김은아 : 배정미씨를 할려고 했다가 같은 의학물인 <그레이 아나토미> 주인공이기 때문에 패스. -_-;; 카메론처럼 이렇게 색깔없는 사람이 제일 힘들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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