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복지와 다크나이트 라이즈(내용 다 있어요)

 

아래 두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이에요.

 

*듀게회원게시판 lonegunman 님 리뷰 http://djuna.cine21.com/xe/breview/4392937

*한겨레 기사 [단독]살해된 통영 초등생, 새벽 5시 전화해 “배가 고파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3953.html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대놓고 첫 편으로 돌아갑니다. 라스 알 굴의 개똥철학만이 아니고(이거 때문에 닭나돋네(다크나이트 라이즈… -_-)의 의미가 좀 흐려져요) 처음에 왜 시작을 했느냐는 의문을 하기 때문이죠. 닭나돋네는 기본적으로 소박한 감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2편인 다크나이트는 거대한 틀을 다루고 있다면, 론건맨 님 말씀대로 3편에서는 거대하게 보는 사이 놓친 것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죠. 핵심이라고 봐요.  링크한 한겨레 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소한 것이 비었을 때 어떻게 되느냐라고 봐요. 왜 한 아이가 죽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는 이런 것이 필요했는데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죽은 아이가 평소 배를 곯지 않으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마을 사람들이 챙겨주었으면, 아버지가 신경을 더 썼더라면, 새엄마가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주변에 살았던 사람이 성범죄자가 아니었으면…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변수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결과를 낳았죠. 한 아이가 죽은 거대한 사건 뒤에는 그렇게 자잘해 보이는 일이 겹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잘한 일은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마을 사람들 인심이 좋으면 된다? – 어떻게 하면 시골 인심이 좋아질까요? 일용직으로 일한다는 아버지가 신경을 더 썼으면 된다? – 어떻게 하면 신경을 더 쓰게 되었을까요? 엄마가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된다? – 어떻게 하면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을까요? 주변에 성범죄자가 살지 않았으면 된다? – 어떻게 하면 거기에 살지 않았을까요? 일견 가장 속편하고 손쉬워 보이는 방법은 개개인이 알아서 했으면 된다에요. 시골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시골 인심이라는 걸 지켜야 하고,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건 신경을 더 써야 하고… 저 기사에서 결국 짚고 싶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건”이라는 게 정말 개떡같다는 게 아닐까요. 바로 저 문제의 “어떤 상황”을 최대한 좋게 하는 건, 결국 사회의 문제인데 그걸 생각도 못하고 살다 보니 “어떤 상황”은 늘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마는 거죠.

 

브루스 웨인한테 복창 터지는 일은 자신이 최대한 “어떤 상황”을 낫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 연골은 다 나가고 어디 성한 구석 하나 없이 온몸 바쳐 말이죠 – 남은 건 팀 버튼의 <가위손> 주인공마냥 홀로된 삶과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자기 책무 밖에 없다는 거죠. 브루스 웨인한테 도시 하나를 구하겠다는 것은 야망이기보다 책임감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모든 걸 다 쏟아 부어도 남는 건 멘붕과 미해결 뿐이라는 현상 자체가 브루스를 잡아 먹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아직도 부족하길래 – 다시 말해 나 브루스는 무엇을 덜 했길래 아직 이런 건가?

거기에 기름 부어 불 붙인 건 베인보다도 블레이크였죠. 웨인 기업이 돈줄 끊어서 애들이 고생한다, 웨인 입장에선 뭔가 심각히 잘못 꼬인 겁니다. 분명 범죄자들을 잡아서 넣었고 범죄자와 공권력의 유착을 끊었어요. 경관이던 고든이 청장까지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당놈 하나가 나서니까 도시 전체가 작살이 납니다. 그리고 여기서 브루스나 알프레드나 폭스 등이 짐작하면서도 입으로 꺼내지 않는 문제가 떠오르죠. 범죄자와 공권력의 유착은 사실 범죄자와 금권력의 유착에서 나온 한 갈래였던 것 뿐이죠.

브루스가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딱 그걸 알았을 순간에 자신한테 금권력이 없다는 거였을 거에요. 공권력은 억만장자 자경원으로서 무시할 수 있는 거라면, 금권력은 억만장자로서도 상대조차 안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그 억만장자라고 하는 것이 클릭질 하나에 나가 떨어지는 허망한 것, 실체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최악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면 자기의 금권력이 필요한 건데 딱 그 순간에 깡통 찬 신세가 되고 만 거에요. 이렇게 해서 극과 극은 서로 통합니다. 아주 소소한 사실 하나, 고아원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려면, 도시 전체를 움직이는 금권력이 나서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에요.

 

 

한겨레 기사에서 말하는 것도 그거입니다. 시골 아이 하나가 배를 주리지 않으려면, 나라 전체의 흐름이 원활해야 하고, 나라의 힘이 정직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거죠. 가정조사가 잘 되었다면, 학교에서 급식이 잘 되었다면, 관리사가 자기 역량에 맞는 수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면 – 바로 이런 일반인의 손을 떠난 거 같은 거대한 체계가 잘 돌아갈 때 가능하다는 거에요. 선별복지. 언제 그거 다 세고 있답니까. 무상복지에 맞는 예산규모를 마련한 후 무상복지를 하는 게 제일 최선입니다. 개개인한테 이래라 저래라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고담 시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담 시의 공권력 금권력 모두가 다같이 협동해야 가능합니다. 배트맨 혼자서 날고 기어도 해결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 거죠. 그걸 지나치게 크게 잡고 뛰어들었던 브루스 웨인은 결국 개인으로서는 망가지고 맙니다.

 

 

소소한 것을 보라고 지적하는 것은, 작은 데만 집중하란 뜻이 아닙니다. 그 작은 것을 고치기 위해서 얼마나 큰 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깨달으라고 하는 거죠. 닭나돋네가 이전의 <다크나이트>와 비교해서 규모는 큼직한 거 같은데 조곤조곤해 보이는 것은 (론건맨 님이 지적한 그대로) 큰 게 바뀌어야 작은 게 바뀌기 때문이죠. 이는 기실, 작은 거 하나하나 바꾸면 큰 게 바뀐다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작은 거 하나하나 바뀌어 봤자…이기 보다는, 작은 거 하나하나 바뀌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거에요. 큰 것은? 그런데 큰 것은 좀 다릅니다. 특히 체계가 수직체계로 되었을 때는, 큰 거 하나가 바뀌면 작은 거 하나하나가 바뀝니다. 서울시장 하나 바뀌었다고 행정 싹 달라지지요. 레비아탄의 ‘두뇌’인 딕 로먼을 해치우면 나머지 레비아탄은 일단 걱정 접어도 되는 거랑 같습니다. (아, 이건 미드 수퍼내추럴의 시the망을 때린 시즌7 이야기.. -_-;;;;; ) 작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개인 혼자서 알아서 해결할 게 아니란 거죠.

 

 

닭나돋네에서 소소함을 보도록 유도하는 인물은 대표적으로 알프레드, 폭스, 블레이크에요. 토끼군 캐스팅 자체로 ‘쟤 말만 안 하지 로빈이구나’했던 저로선(블레이크가 자기 고아원 생활 이야기할 땐 확인도장이었고요) 옆의 보조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이 브루스 웨인으로서 옆을 둘러보는 것을 지적하는 장면이 은근 좋았습니다. 블레이크는 배트맨더러 나오라고 족치진 했지만, 배트맨 혼자서 그걸 해결하란 뜻은 아니었습니다. 따악 분위기로 ‘그쪽 도련님 동굴 밖에 나오시면 내 옆에 있어준당께’  이 포스를 풀풀 날리는데, 사실 그 분위기 때문에 더더욱 전 ‘쟤 로빈이냐?’ 이랬죠.

브루스한테 폭스와 알프레드는 옆을 둘러볼 것을 권했지만, 그건 브루스가 진짜 듣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브루스는 자기 행복 이전에 ‘넌 충분히 다 했어’라는 확인도장을 받고 싶어했죠. 자기가 다 했는지 아닌지 안절부절하는 애한테 그만 좀 해라는 크게 도움이 안 되었어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류라면 예쁜 여자들 사이에 던져 놓기만(?)하면 90%는 해결될 일이지만, 꽁하게 자기 동굴이나 파는 애한테 이쁜 여자가 옆에서 서성서성하는 건 도움이 별로 안 되지요. 덥석 보쌈(?)하고 나갈 여자가 도움이 됩니다. 알프레드 영감님 의외로 그런데 둔했단 거죠.. -_- 쯧쯧.

아직 할 게 남았다는 블레이크의 말은 뒤집어서 보면 ‘이걸 다 하면 넌 다 한 거야’입니다. 그건 전사의 역할을 어쨌거나 포기하고 ‘이제 뭐 하지’의 멘붕(-_-)에 빠진 브루스에게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려준 것이죠. 브루스가 의외로 셀리나 카일한테 껌벅 넘어간 것도 셀리나가 따악 부러지게 브루스한테 상황을 짚어준 탓도 클 겁니다. “너 더 이상 이런 짓 안 해도 돼, 이 답답아!!!!!!!!!!!!! (목 잡고 짤짤짤)” 셀리나한테 진주목걸이가 매우 잘 어울렸다는 사실도 2% 쯤은 넣겠습니다. 그렇게 생긴 목걸이는 고전적으로 생긴 여자한테 어울립… 풀썩.

 

 

<배트맨 비긴즈>를 보면,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머스가 지닌 진정한 무기는 금권력입니다. 토머스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의 부를 자랑도 부끄럼도 안 하고, 이걸 어떻게 잘 쓰냐를 생각했지요. 닭나돋네에서 웨인 무기고가 털려 악당 손에 넘어가는 것, 그건 자본이어도 차이가 없습니다. 잔인한 현실이에요. 그리고 이미 자본은 털린 후였고 그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거죠. 고아원 지원을 민간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후진 일인지 딱 대화 하나로 처리하지만, 그런 결과 하나가 뭐에서 비롯한 건지 정곡을 푹 찌릅니다. 고아원 지원 왜 끊겼냐니까 ‘회사가 돈을 벌었어야죠’하고 튕기는 알프레드의 모습은 거대한 걸 떠나 작은 면으로 들어가야 하는 브루스 웨인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줍니다. 웨인은 이제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라 정말로 자기 아버지가 하던 길을 이어 받아야 하죠.

웨인 기업의 임원으로서 브루스 웨인이 개인적인 행복을 얻은 것은, 기실 알프레드의 삶이 보상을 받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렇다면 브루스한테 남은 것은? 개인으로서의 브루스 웨인이 그 행복과 남아 있는 자기 의무를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리고 ‘모두가 배트맨이 되기를 원했던’ 브루스의 소망과 엮어서 이 상황을 보면,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놓인 과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으로서의 행복도 중요하고, 그리고 자기의 의무(사회 구조에 자기의 양만큼 책임지는 것)을 잘 조율하는 것이 세상을 살리는 거죠. 진짜 개개인으로서 중요한 건  ‘내가 부족해서 저런 일이 생긴건데’라는 체념이 아니라 ‘세상에 이것이 부족하다면 내가 사회 전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존재다’라는 걸 알고 하는 실천이란 거죠. 조커가 진정 깨부시고 싶었던 건 이런 믿음(이것이 환상이라 보았기에)이고요.

 

 

 

*추신 – 개개인이 뭉쳐서 모인 집단의 의미가 최소한 닭나돋네에선 거의 없습니다. 뭉쳐봤자 좋은 뜻으로 안 뭉치고 아집이나 편견, 폭력으로나 뭉치죠.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경향이라 봐도 될 거 같아요. <다크나이트>에서도 배 위의 시민들이 막장으로 가는 판단을 그만둔 것은 집단으로서의 행동이기 보다 개인으로서의 행동이 더 의미 있었죠. 수많은 사람들아 걍 모래알로 ㄱㄱ 이런다는 건 아니고, 제가 보기엔 밉든 곱든 공권력이 아닌 형태로 모인 통제 안되는 집단의 결말은 공권력보다 더 위험하다는 게(그 대의가 어떠하건) 놀란의 견해가 아닌가 싶어요.

 

콜로라도 오로라 시 총기난사 사건에 조문을 온 크리스찬 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