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오세홍 님을 추모하며

어제 소식을 들으셨을 텐데요. 성우 오세홍 님이 63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티브이 데일리 “‘짱구 아빠’ ‘마이콜’ 성우 오세홍, 22일 별세”

‘짱구 아빠’로 세대를 걸쳐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테고, <엑스파일>과 < er>을 좋아했던 제겐 악당 크라이첵과 닥터 그린으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분입니다. 그 분은 연기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연기만큼이나 제작에도 꿈을 여전히 잃지 않은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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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을 처음 직접 본 것은 < er>을 SBS에서 방송하던 당시 더빙견학을 가서였습니다.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뭘 꺼내려고 허리를 수그리고 뒤적뒤적 하는데 뒤에서 닥터 그린이 부르시더랍니다.

“남명희 씨.”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속에 든 생각은 닥터 그린이 나를 불러주셨어가 아니었습니다. ‘나 청바지 입고 허리 수그리고 있는데!!! 내 뒷모습이 혹시 이상한 거 아닐까? 혹시 청바지 안쪽의 다른 옷이 보이는 건 아니야??!!!! 으아아’ 이런 거였죠. 그 생각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때 나눴던 대화는 다 잊어 버리고 그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제겐 잊지 못하는 인터넷방송 ‘옛날 방송국’과의 인연 시작이었습니다.

오세홍 님은 라디오 극의 부활을 인터넷에서 이루고 싶어하셨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종류로 외화 시리즈의 패러디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셨죠. 오세홍 님은 ‘오세홍 아저씨’가 되었고, 구자형 님은 ‘자형 오라버니’가 되었으며, 저는 친구 수나와 함께 옛날방송국에서 1년여 동안 수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제가 그 나이에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최고 중의 최고인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지금 와서 본다면 혼날 일이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옛날방송국에는 무언가를 가져간다면 평가를 받고 수정을 받았지 면박을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새파란 아이가 치기 어리게 가져간 것도 토론의 대상이 되었고, 그것은 전문가들의 수정을 거쳐 구체화되었습니다. 저는 글로 쓴 것을 머리로 읽는 것과 실제로 말하고 듣는 것의 차이를 그 때 배웠으며, 한 줄 글로 쓰는 것이 어떻게 무게를 가지고 생명을 얻는지 알았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그 때 얻은 깨달음은 피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지요. 가르침은 짧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움은 정말 천천히 길게 가는 것이고, 그 결과는 망각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올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엑스파일> 이야기를 꺼내겠습니다. 2009년 1월 <엑스파일>과 <수퍼내추럴>의 제작자이자 감독인 ‘킴 매너스’가 폐암으로 타계했습니다. 연출가로서 탁월했으며 모든 제작진을 아울러 좋은 작품을 만드는 훌륭한 제작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너스 감독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기에 슬픔에 잠겼지요. <엑스파일>에 한 번 출연했고, <수퍼내추럴>에 후일 고정으로 출연하게 된 배우 짐 비버(바비 아저씨 역)은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 마지막 몇 달간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 – 내가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사실에 후회를 안고 무덤으로 가야 할 겁니다. 진정한 친구를 그렇게 보내고서 얻은 교훈이에요. 내가 말할 수 있는 변명은 내가, 정말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 무엇도 킴을 그렇게 쓰러뜨릴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나는 킴 매너스를 사랑했고, 그 친구가 그것을 알아주길 빌 뿐입니다.”

저 역시 같은 후회를 안게 되었습니다. 몇 달 전에서야 저는 오세홍 아저씨의 병환 이야기를 들었고, 전화 한 번 해 보라는 권유에도 나중에 일어나시면 그 때가 더 연락하기 좋겠지 하고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오세홍 아저씨께 편히 쉬시라는 말을 하려다가도 주저하게 됩니다. 그 분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곳에서 일단 쉬시고 기운 나시면, 다시 하고 싶었던 것을 마저 다 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뵙게 된다면 그때 전 제가 무얼 배웠는지 말씀드리고,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5년 5월 23일

명희 드림

 

2 Replies to “성우 오세홍 님을 추모하며”

  1. 짱구만 보면 아직도 생생히 옆에 계시는 거 같은데 말이죠. 모든 매체들이 아니라고하니까 모르겠어요. 아…. 정말 모르겠어요.. 그냥 그리워요. 정말 세홍님이.

    1. @강타빈 / 일어나서 뭐 하다가 제가 이 글 쓴 거 보고 다시 새삼스레 그런 건가 설마 그런 건가 아직까지는 이러고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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