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는 힘이 세다 “미션 특급”

컬트가 ’일정 소수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여기에 한 가지 조건사항을 달면 더 금상 첨화다. ‘악조건 속에서도 일정 소수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오우삼이 바다 건너가서 제일 처음 한 것은 극장용 영화보다도 TV 영화였다. 그것도 미국이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합작품이었다. 미국의 20세기 폭스와 캐나다의 알리안스가 합작한 이 작품은 <신종횡사해/미션 특급 (Once a Thief)>이었다. 오우삼이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 <종횡사해 (Once a Thief)>하고는 남자 둘 여자 하나라는 설정 빼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코믹 액션물이었다. 알리안스에서는 이 액션물을 TV 시리즈화하기로 결정했고, 단 한 개 시즌으로 끝나고 만 불행하고도 귀여운 22편짜리 시리즈가 바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신종횡사해>이자 <미션특급>이다.

<엑스파일>의 ‘쥐새끼’ 크라이첵, 니콜라스 리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봤는데, 정말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설프고, 좋은 말로 오버액션 까고 말해 후까시, 뭔가 나사빠진 듯한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런데도 보다보니 점점 중독이 되기 시작했다. 안보면 섭섭하고, 보면 어이없다. 이 기기묘묘한 조화는 도대체 무엇일까?

<신종횡사해>는 일종의 캐릭터 잔치다. 한때는 홍콩 갱단에 있었다가 이제는 범죄자를 소탕하는 비밀기관에서 일하는 맥, 맥의 옛날 애인이었던 리안, 리안의 지금 애인인 전직 경찰 빅터. 그리고 이 셋을 총괄하는 국장(KBS에서는 부장), 이렇게 넷이 활약하는 이야기이다. <신종횡사해>에 등장하는 뜬금없는 악당과 어설픈 비밀기관은 전부 만화적이고 극단적이다. 보다보면 ‘깔깔깔 웃기보다는 푸훗~ 하고 웃는’ 일이 비일비재한다.

매사 사건사건은 허를 찔러댄다. 무기가 없는 가난한 테러리스트는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싸운다. 스너프 필름 찍으려고 쇼걸 불렀는데 그 여자 데리러 오는 부하들이 안 오자 그 악당 왈, “왜 불렀는데 안 오고 지랄이야!” 어떤 가족(입양아 포함)은 도둑질하는 것을 가족애로 알고 살아가고, 아버지 뒤를 이어 조직 대부가 된 10대 망아지는 그저 멋져보이려고 다른 갱단을 박살낸다. 이 막나가는 시리즈를 보면 캐나다 본래 이런 나라였나, 싶다. <신종횡사해>는 말이 코믹 액션이지, 22편 중에 실제로 총을 총답게 쓰는 에피소드는 반이 채 되지 않는다. 모 성우의 표현대로 ‘쟤들은 총은 안 쏘고 이빨만 까나’ 싶다. 액션보다도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들의 향연과 대책없는 패러디와 ‘변태국장’의 기행과 오버액션이 이 시리즈를 만들어 나간다.

이제 케이블의 <신종횡사해>와 KBS <미션특급>의 차이에 대해서. <미션특급>은 출발부터 순탄치 못했다 이승연의 출연 불발로 펑크난 드라마(이름 잊어버림) 시간을 메꾸려고 월요일 화요일 10시에 방영한 것은 정말 사건이었다. 그 화려한 출발 이후로 수요일 밤 12시 20분이라는 심야시간을 지킨 <미션특급>은 정말로 컬트로서 역할을 다 했다. <미션특급>의 우리말 성우진은 환상적이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기반으로 딱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한 성우진의 화려한 말발은 정말 특급이었다. 구자형, 오세홍, 정미숙의 3자 플레이에 성병숙의 카리스마 넘치는 ‘변태국장’의 압도감은 매주일을 즐겁게 했다. 우리말이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마치 우리말을 위해 만든 드라마 같았다. 연륜 쌓인 성우들이 토해내는 오버액션은 그 자체로 감격이었다. 매사 나오는 캐릭터에 딱 맞는 목소리의 향연, 이것 때문에 이미 케이블로 본 <신종횡사해>임에도 <미션특급>은 수요일 심야를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어떤 영화는 어설픈 면을 우리말 녹음에서 다 보완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션특급>은 보완 정도가 아니라 빛이 나게 했다. ‘웬수버러지 마이클과 빙신졸개’들이 우리말 옷을 입고 나자 ‘캡샤프 마이클과 2류 졸개’들로 격상한 것은 정말 쇼크였다.

<신종횡사해>가 정말로 컬트라는 확신이 든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광적인 소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자기 인생의 중심으로 들어오며 크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닌데도 열심히 챙겨보는 자신에게 놀라는 순간을 경험케 하기 때문이다.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워했지만 사랑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 톰 웨이츠의 “Time”이 흘러나오는 KBS판 마지막회를 보면서 그 오밤중에 울 뻔 했다. 이것이 정녕 이별이란 말인가? 이렇게 혼자 사랑하고 혼자 보내면서 혼자서 쇼하며 아파하는 게 컬트라는 것일까? 그러나 컬트는 혼자가 아니다. 종영한지 오래인 이 시리즈 홈페이지를 아직도 운영하는 사람 중 하나가 “캐나다의, 캐나다를 위한, 캐나다에 의한!” 이라고 자부심과 사랑이 넘쳐 커다랗게 써 붙인 것을 본 순간은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이것이 오버액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