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치밀하다 “마스터 키튼”

미국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치밀한 인간군상과 탄탄한 줄거리가 나오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만화에서 섬세한 캐릭터와 카리스마 넘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일본출판만화의 양적 질적 수준은 세계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럴 만한 가치와 품위가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와 카추시카 호쿠세이의 합작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으로 물오른 실력을 보여주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마스터 키튼>은 만화라고 부르면 너무 카테고리를 좁게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드라마 자체다. 특히나, 단막극 형식으로 큰 기둥줄거리와 단편으로 이루어진 것부터 미국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한 권이 한 시즌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화 <마스터 키튼>의 미덕은 어느 이야기 하나 허점이 없고, 섬세하고 치밀한 고증 아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런 것인가’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아예 만들지를 않는다.

이 <마스터 키튼>이 TV 만화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반영국인, 반일본인인 키튼이 보험 조사원으로서, 전직 군인으로서, 고고학자로서 벌이는 모험의 이야기가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다. 매드하우스에서 TV 시리즈화한 만화영화버전은 총 2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체도 약간 길어진 것 빼고는 나오키의 스타일과 매우 흡사하다. 에피소드 자체도 두뇌싸움 에피소드와 감동 에피소드 양쪽에 공들여 분배, 선택한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워낙 세계적인 소재를 잡은 것이 주효했던지, 방송을 타는 일본만화로서는 처음으로 주인공 이름이 일본인 그대로 등장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열두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밥을 굶는다고. 전직 SAS 요원, 현직 강사겸 보험조사원 키튼의 고민거리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하는 보험 조사원보다는 다뉴브강을 뒤지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데, 강사 자리는 나지 않고 너무 뛰어난 보험 조사원으로만 활약하게 된다.

고고학이라는 점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생각나지만, 키튼은 역시 맥가이버의 후손이다. 꺼벙해 보이기 쉬운 외모에 촌철살인의 두뇌가 존재하고,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행복하게 살고싶어하는 소망을 지니고 소소한 것에 즐거워한다. 키튼의 부드러운 성품은 때로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때로는 지나친) 감상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삶에 대한 성찰과 아름다움이 이를 보상한다. 이야기 전체는 키튼의 머리와 가슴으로 나눌 수 있는 셈이다. 키튼의 삶 자체가 비정할 정도의 인간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하면서도 자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옆집 아저씨같은 외모에 생사가 갈리는 모험을 하고, 온갖 인간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도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는 키튼의 부조화는 오히려 우리 인간의 전체 모습이라는 조화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해서 키튼은 인생의 달인이 되어간다.

아쉬운 것은, 만화 <마스터 키튼>의 빠른 속도감이 만화영화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똑같다보니, 만화의 영화적인 컷 배열 방식이 돋보이는 레이아웃이 만화영화로 이전되면서 화면나열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화되었다. 일본만화가 초당 컷수가 느린만큼 드라마의 흐름 자체가 느려지고 만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만화영화 <마스터 키튼>은 딱 80년대 <맥가이버>의 속도이다. 90년대 말과 2000년에는 상대성 법칙에 의거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속도가 느리다보니 만화를 먼저 본 사람은 속이 터질 확률이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창동의 영화가 80년대 정서를 2002년에 똑같이 재현하다보니 구려지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만화영화 <마스터 키튼>은 사실 만화 <마스터 키튼>의 입문서로서는 아주 좋다. 속도가 느려서 문제지 ‘똑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내용의 치밀함과 고증은 살아있다. 원작 만화 자체가 워낙에 영화적인 줄거리와 스타일을 가졌기에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한번 드라마에 빠지면 몰입하게 된다.

투니버스는 때때로 <카우보이 비밥>, <보노보노> 등 원작과 비교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리말 버전을 내놓고는 하는데, 우리말판 <마스터 키튼>도 우리말 캐스팅 면에선 상위권에 해당한다. 만일 그림전개가 마음에 안 든다면 라디오드라마를 듣는 기분으로 (내용뿐만 아니라 대사도 거의 틀린 곳이 없기에) 봐도 좋다. 남을 압도하지 않지만 결코 압도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키튼의 목소리는 만화로서는 못 만나는 재미이다.

목소리에 얽힌 재미있는 뒷이야기. 원판 키튼을 맡은 이노우에 노리히로와 우리말판 키튼을 맡은 오세홍. 이 두 사람은 기가막히게 목소리가 똑같다. 게다가 우연찮게도 두 사람 다 드라마 < er>에서 똑같이 닥터 그린 역을 담당했다. (확인사살은 BS2에서 할 수 있다) < er>에 이어 <마스터 키튼>을 보고 나서 얻을 수 있는 재미. 똑같이 스트레이트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이 두 배우의 다음 행보가 혹시 또 겹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