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은 몇 살? “말콤네 좀 말려줘” (미수록분)

이 세상 어느 집이 난리박살이 아니겠지만, 말콤네는 정말로 심각하다. 집나간 형까지 총 아들만 넷. 고만고만한 나이의 사내애들 셋이 모인 집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그러나 이 난장판을 아울러 영원한 암흑 속에 가둘 절대자가 있으니, 두 글자로 ‘엄마’라고 한다. 심슨 가족을 탄생시킨 미국 20세기 폭스 TV에서 자랑스럽게 내놓은 또 하나의 가족, 바로 말콤네 가족이다. ‘쫓겨나서’ 결국 군대에 가 있는 첫째 형 프란시스, 고문기술자 둘째 형 리즈와 어리버리한 동생 듀이, 왜 동생이 어리버리한지 유전학적으로 증명하는 아버지 할, 수소폭탄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어머니 로이스 그리고 똘똘한 냉소주의자 말콤. 이들이 말콤네 집안 사람들이다.

<말콤네 좀 말려줘 (Malcolm in the Middle)>가 수많은 가족들을 제치고서 돋보이는 첫 번째 이유는 누가 뭐래도 이 가족 구성원들이 펼치는 엽기성과 풍자성이다. 실사 영화지만 마치 만화에 가까운 전개를 하곤 한다. 대만 드라마 <빈궁귀공자>가 동남아권 만화의 시각적 효과(날아다니는 하트, 떨어지는 별눈물 등등)을 주로 이용한다면, <말콤네 좀 말려줘>는 미국 만화영화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파괴적인 속도감과 슬랩스틱을 사용하곤 한다. 이 지점에서 연극에 가까운 일반 시트콤과는 다른 ‘변형적’인 시트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말콤 가족의 만화적인 성격은 단지 형식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내용 면에서도 비틀기와 풍자의 강도에서도 <심슨>의 후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강력한 과장법을 구사한다. 말콤네 가족도 상당히 단순한 편이지만, 말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더욱 캐리커처화 되어있다. 마치 <심슨>에서 옆집 식구들이 모두 ‘짜증나는 천사’처럼 등장하듯이, 남을 도와주는 것이 정말로 세상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준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말콤의 담임 선생, 학교 친구들과 친구 스티브의 부모 등은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역할에 더욱 충실하다. 게다가 휠체어 신세에 천식까지 있는 말콤의 친구 스티브에 이르면 더더욱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만화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콤이 자기 신세한탄을 하며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며 걷지도 못하는 스티브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말콤네 좀 말려줘>와 가장 비슷한 드라마는 <심슨>보다도 <케빈은 12살>이다. 우디 알렌을 연상시키는 시끄러운 주인공의 독백, 이미 훌쩍 커버린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족의 이야기. <말콤네 좀 말려줘>는 <케빈은 12살>에서 향수와 감상성을 쪽 빼버리고 대신 <심슨>의 폭력성과 촌철살인을 넣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케빈은 12살>은 극자체가 과거를 바라보는 향수에 기대고 있을뿐더러, 당시 80년대의 보수주의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음모론의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90년대의 감수성으로는 향수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말콤네 좀 말려줘>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말콤이 바라보는 현재의 문제로 가족이란 ‘화두’를 풀어간다.

말콤이 혼자서 속으로 떠벌이는 냉소는 우디 알렌에 필적하고 장난기와 유머감각은 바트 심슨을 능가한다. 하지만 말콤은 케빈보다 훨씬 애늙은이다. ‘머리가 구름 속에 둥둥 떠 있는’ 말콤의 아버지와 현실적으로 투철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실행하는 어머니의 대조는 말콤 정도의 지능지수로도 이해하기 힘든 현실의 단면이다.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기에는 인생은 현실적이다. 말콤의 어머니 로이스가 점장과 싸우고 얼마간 일을 못하자 한 동안 비참 그 자체로 살아야하는 에피소드는 명쾌하면서도 비참하고, 동시에 만화의 과장법이 얼마나 리얼리즘과 기묘하게 맞닿아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인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애늙은이, 바로 그 존재가 말콤인 것이다.

<말콤네 좀 말려줘>가 과장과 웃음 사이에서 힘을 얻는 것은 그에 준하는 냉철함과 현실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쓴맛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말콤에게는 그만큼의 내적 성장이 있다. 어린 나이의 말콤에게는 지금까지 어느 캐릭터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저력이 있다. 그것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말콤은 때로 중하층인 자기 집안에 모멸감까지도 느끼지만 자기 집안을 끈끈하게 맺어놓는 연대감을 안다. 그것은 가족의 사랑이 아니다. 가족끼리의 믿음이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가소로운 세상의 평가기준 때문에 나의 자존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믿음. 이 믿음이 겉보기엔 콩가루같은 집안을 엮어주는 매개체이자, 희망이다. <말콤네 좀 말려줘>는 만화스러운 변형 속에서 현실의 진실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게 해서?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현실과 맞붙어 맞장은 뜰 수 있는 것이다.

2 Replies to “말콤은 몇 살? “말콤네 좀 말려줘” (미수록분)”

  1.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콤네 좀 말려줘’는 딱 ‘심슨’ + ‘케빈은 12살’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1. 예전에 OCN에서 해 줄때 많이 못 챙겨봐서 아쉽더라고요. 꽤 인기 좋았을텐데 재방을 하지 않아 당황했답니다. ;; 의외로 이 시트콤 아는 분들 드물었는데 말콤네 재미있게 보신 분 뵈니 반갑습니다 :D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