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수퍼내추럴 SN603 The Third Man과 무상함

… 수퍼내추럴의 매우매우 좋은 점이, 깊이 생각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리고 깊이 생각지 않는다 하여 진실함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개그가 개그로 머무려면 기실 엄청난 정치중립성이라 해야 하나 – 그런 게 필요하지요. 한 쪽에 기울지 않으면서도 한 쪽을 냅다 까댈 수 있는 균형을 맞춰야 하니까요. 전 안 봤는데 근래 NCIS 개그수사대가 좀 불균형한가 봅니다. 현실을 반영하려면, 필연적으로 현실의 불균형도 같이 따라오게 됩니다.
그거 때문에 SN603 The Third Man 제 3의 사나이 감상문 쓰기가 좀 껍껍하더라구요 -_-

 

 

이거 작가가 이번에 제작지휘로 승급한 벤 에들런드 작품이에요. 그리고 이 양반이 암만 봐도 ‘굴리면서 좋아하는’ 카스티엘 빠라는 게 명명백백한 지라… 기실 이 작가 에피소드에 캐스가 나오면 꼭 왕 민망하나 웃기는 개그가 꼭 들어가지요. 504 The End에서 여자들 거느리고 히피 행세하는 카스티엘 모습이라던가, SN510 Abandon all Hope의 데킬라 스트레이트 캐스나, SN514 My Bloody Valentine에서 처묵처묵 캐스라던가… (으하하 저 그 장면 아직도 늠늠 웃겨서 제대로 못 봐요 ;;; ) 이번에도 역시나 ‘격렬한 따옴표’가 압권이었죠.

(또 써먹어야지 히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엑스파일 때는 마음놓고 심각한 척 할 수 있어 좋았어요. ㅋㅋㅋ 하지만 슈내를 놓고는 마음놓고 심각하기가 힘들어요. 그건 슈내의 입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심각해지는 순간, 이야기가 딛고 서 있는 균형이 와장창하기가 쉬워요. 그 때문일지 몰라도, 작가들조차 정말 파고 들 수 있는 것을 덮는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 중에서도 (지금은 없는) 제레미 카버가 그랬죠. 그 사람도 어지간한 캐스 빠여서 그 사람이 썼다 하면 카스티엘이 반짝반짝했단 느낌을 받아요. 딱 한 편 빼고요. 에헴.

 

(글 이어집니다)그럼, 이제부터 걍 심각하기로 하고 가벼운 감상기 (?????????????????????????) 나갑니다. 내용 다 있어요.

 

벤 에들런드는 워낙에 덮어놓고 웃기는데 일가견이 있어서 파고들어도 잘 눈에 띄진 않지만, 슈내에서 중요 작가로 부상하면서 점점 어딘가 의뭉스럽게 파고들 부분을 슥 덮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SN416 On the Head of a Pin이 그랬죠. 이야기가 진행해야 하니까 중요하게 나오지 않지만, 전 묘하게도 그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게 ‘무상함’이라고 봤거든요. 그렇게 놓고 보면 504 The End – SN510 Abandon All HopeSN514 My Bloody Valentine520 The Devil you know603 The Third Man 에 이르는 큰 흐름이 잡혀요. ‘On the head of a Pin’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제가 아는 분이 그게 ‘못 머리 위에서 천사 몇이 춤을 출 수 있느냐’라는 신학토론에서 나온 구절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이야기 안에서는 ‘처음부터 다 의미없는 거였다’라는 샘의 대사를 뒷받침하지요.[#M_more..|less..|

 

 

이번 에피소드 603은 제목 상으로는 영화 ‘제 3의 사나이’를 떠올리고, 실제로 카스티엘과 발타자르의 대사는 그 영화에서 나온 대사를 인용하다시피 쓰고 있죠. 특히나 발타자르가 ‘할 수 있으니까 했지!’ 이거 말이죠. 그리고 인물 관계도 그래요. 친구라고 믿은 사람이 알고 봤더니 악당짓을 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그 동안 믿어온 그 사람이란 단지 허상일 뿐인가? 그리고 그 허상을 믿어온 나 자신은 뭐가 되는가? 이런 거죠.

벤 에들런드는 표면에 영화 ‘제 3의 사나이’를 깔아놓고, 그 밑에 밑밥 참 잘 뿌립니다. 뭐 발타자르 이리보고 저리봐도 게이삘 충만한 것도 그렇지만.. -_- 아저씨 멋지다구… 카스티엘의 입지라는 게 벙찌게 된 거죠. 카스티엘은 거대한 계획을 멈추었고, 본의 아니게 모든 반항심 넘치는 천사들의 대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걸 바란 건 아니죠. 자기가 계획을 멈추면, 형제들이 ‘아, 그 계획은 이런게 아니었구나’하고 돌아보기를 바랬죠.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카스티엘은 이미 자기가 형제들에게 품었던 믿음이 깨진 것을 경험했고, 그런 허상을 믿은 자신에 대해서 허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죠. 발타자르는 그냥 확인 도장일 뿐입니다. 발타자르가 자꾸 카스티엘과 자기가 닮았다고 말하고, 자기는 그저 카스티엘을 따라가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연장이죠. 발타자르 취향이 70년대 디스코로 나오는 것은 504의 미래 카스티엘이 히피 흉내를 내며 여자들 거느리는 것의 은유라고 봐도 됩니다. 발타자르는 카스티엘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 뿐이에요. 프랑스 어로 열 둘이 뭐냐고 묻는 장면을 저는 ‘아침에 여자 열 둘과 놀았다’라는 함의로 읽었어요. 허무함이란 주제, 504에서 카스티엘이 딘한테 말하는 게 그거죠. 꺼져가는 불꽃이 마지막으로 몸부림 치는 거요. 발타자르는 카스티엘더러 허망함을 깨뜨리려는 노력 자체가 허망함을 지적한 거죠.

 

당신게이삘이충만해.jpg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벤 에들런드는 카스티엘을 좋아하긴 하는데, 카스티엘을 좋은 인물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못된 짓도 아주 거리낌없이 잘 하는 것으로 해석하지요. 이게 어떤 철학이랄까, 아니면 확고한 인물분석에서 나온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인데 – 카스티엘이 자기 동료 죽이는 게 시즌 5 첫회부터 등장하는데, 정말이지 에릭 크립키가 쓴 이 에피소드에선 저 정말 ‘근데 왜 죽이는데????!!!’하고 경악했어요. 도대체 저 단역 천사 둘이서 뭘 잘못했다고? 그저 즈가리야 할배 보좌한단 이유만으로???!!!! 도대체 설명이라는 게 밑도 끝도 없이 걍 뭐 잡듯 잡는 거에요. 야 이 문어대가리야!!! 도대체 왜 죽이는데!!하고 거품 물었어요. 정말로, 그 장면이야말로 싸우는 게 아니라 도륙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제레미 카버가 쓴 518 Point of No Return에서도 카스티엘이 자기 동료들 진짜 후루룩 죽이지만, 거기서는 이들이 싸워야 할 목적이라는 게 있었기에 (+ 카스티엘이 딘희 때문에 완전 까칠한 상태였기에) 좀 이유라는 게 있지요. 근데 501은 정말이지 ‘아하하하 미샤 콜린스가 칼질도 합니다’ 말고는 없어서 (그럴 놈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상당히 기분 나쁘게 봤어요. 하지만 벤 에들런드 작품에서 캐스가 하는 짓은, 캐스가 꼭 좋은 놈은 아니기 때문에-라는 게 깔려 있습니다. 싸우지 말자고 입으로는 나불대면서 밑도 끝도 없이 걍 죽여버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일단 그건 앞 시즌에서 워낙 잘 죽여 주셔서 익숙해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말로 해결할 여지도 없이 그저 치고받고 죽인다’라는 천국의 정황을 한 번에 설명하거든요. 전 그 장면, 박력넘쳐서 멋지고 웃기긴 했지만, 진짜 뭐랄까 허탈했어요. 저런 데서 살면 인간스킬 아니 천사스킬(-_-) 다 버리겠다 싶었죠.

이 에피소드가 인물 팍팍 괴롭히는(hurt) 종류라고 한다면, 저한테는 카스티엘이 안되어서만이 아니라, 카스티엘이 정말 바르자고 한 일이 엇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팍팍 파 내서 그래요. 어떤 세상과 그 정황에 분열을 가져오고 파탄지경까지 몰고가는데, 그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기 본성 때문에 일어났다면… 진짜 비극이죠.

 

양푼이튀어.jpg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타자르와 카스티엘을 보면, 이 둘의 사이를 진짜 깨뜨린 건 카스티엘입니다. 카스티엘이 원래 주고받기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진지해서 손해보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죠. 이상한 예를 들자면 자기 게시물에 리플 일일이 정성들여 달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거 – 남들의 선플을 기분좋게 여기면서도 거기에 합당한 것을 해주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요상한 순환구조에 빠지는 거죠. 도움을 청하지만, 정작 도와주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보니, 보답이라고 하는 것이 외려 도와준 사람 화 폭발시키는 거요. 전 이거 다시 보면서, 지난 시즌 내내 딘희가 카스티엘한테 그렇게 차갑고 못되처먹게 군 것이 그대로 재현된 게 아닌가 싶었죠.

 

 

기실, 발타자르와 카스티엘의 관계를 보자면, 카스티엘이 발타자르한테 그렇게 잔인무도하게 대하는 거 …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자기와 반대하는 천사 도륙했던 지난 시즌의 연장선일 뿐이에요.

 

 

발타자르가 카스티엘의 행동에 더 배신감을 느끼는 게 맞아요. 게다가 카스티엘, 보답이랍시고 하는 그 마무리도 엄청나죠. 당연히 꺼내줘야 할 거 꺼내면서 ‘내 빚 갚았어’라니, 사람과 사람(아니 천사겠군요)의 관계를 믿음이 아니라 갚아줘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야말로 둘의 사이를 제대로 망친 거죠. 저지른 만큼 갚아야 한다는 정서는 에피소드 내내 등장하는데, 그게 정의도 아니고 심지어 보복도 아니고,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카스티엘, 정말로 사람 좋기는 한데 못된 것도 맞아요. 이런 걸 생각케 하다니, 벤 에들런드가 엄청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제가 지나치게 엉뚱한 거에 편집증 부리며 진지한 거라 생각할래요. -_-;;;

… 쓰다보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게 정말 무상할 수 있군요. 그것도 잘 되려고 노력한 결과 때문에 말이죠.

 

 

 

* 추신:

뭐 시즌이 계속되니까 그렇겠지만 – 카스티엘이 불러온 ‘새로운 차원의 세계(발타자르 말 인용하면요)’는 카스티엘이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는데 책임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카스티엘은 내전이 일어난 것을 가지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발타자르가 한 말이 맞아요. 내전의 씨앗이 이미 있다가 터진 것 뿐이지, 천사들은 자기들 사이의 내분을 스스로 정리할 수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기에, 상황은 도대체가 달라진 것이 없는 거죠. 카스티엘은 자기가 종말을 막은 것에 대해 자랑하자는 게 아니라, 한쪽의 파멸을 막는 게 옳다고 보았죠. 자기가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 그저 땜방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좌절감 – 그건 카스티엘같이 의무감 충만한 존재에겐 진짜 쇼크입니다. 암만 의무감이 만땅이라 해도, 그건 피곤하고 언젠간 쌓이고 쌓여 자기를 잡아먹는다는 걸 당사자가 제일 잘 알거든요.

 

저는 그 대목을 보면서, 엉뚱하게 신과 인간의 관계가 떠올랐어요. 시즌4에서 천사가 등장하면서 원전 안에는 안 나오지만 팬들 사이에선 끊임없이 나오는 게 ‘자유의지’입니다. 시즌5에서 자기들을 ‘자유의지 팀’이라 부른 건 그냥 구호일 뿐, 실제 그 구호는 이미 정해진 ‘수퍼내추럴’이라는 드라마의 숙명을 뜻하니까요. (자유의지는 진리이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유의지 팀이 이겨야 하는 게 드라마의 ‘정해진’ 방향이죠) 정말로 신이 자유의지를 왜 인간한테 부여했는가, 천사들이 열받는 이유 열 가지 뽑으면 꼭 들어갈 겁니다.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은 설마 자유의지를 그딴 식으로 쓸 거라고 예상 못해서가 아닐까요? 어찌 보면, 지금 카스티엘이 저지른 것은 종말을 막은 게 아니라 천사들에게 자유의지를 준 게 아닐까요?

 

 

 

 

* 추신 2:

604 에피소드 보니 캐스만큼이나 크라울리도 지옥 새로 꾸미느라 생으로 고생하더군요. 한 쪽은 얼결에 맡은 거고 한 쪽은 자진해서 맡은 거라 하지만.. 둘 붙여놓고 술 먹이면 볼만하겠어요. 둘 다 주당인데. ㅎㅎㅎ
_M#]

 

 

http://www.worrynet.com/board/wp/archives/3390 혹은* 이 글에 이어서 더 있습니다.

http://www.worrynet.com/board/wp/blog/3390

 

 

16 Replies to “[TV] 수퍼내추럴 SN603 The Third Man과 무상함”

  1. 와..전..워리님의 글을 볼때마다..드라마를 보고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하고..놀라게 된답니다…
    그리고..완벽히는..이해를 못하는..부족한 제 자신을…보게 되죠…^^;;;;;;;;;;
    그래도..암튼… 잘 읽었습니다…….
    아래 트위터..메세지?에.한지수씨 무죄선고 받으셨다는 말씀에 눈이 번쩍…
    너무..고생하셨습니다..어서 돌아오시면 좋겠습니다….
    지난주인가??지지난주인가?에서야(당최 어제일도 기억을 못하는….)슈내시즌6 두편 봤어용……
    반가운,,두 남자….
    이제는…남의 남자….
    ㅋㅋㅋㅋ…
    암튼….슈내의 마무리는..어떻게 끝이 날것인지….궁금하네요…

  2. 아, 저 그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캐스가 본의아니게 반항아들의 우상이 되어 있는 거요. 정말 너무나도 카스티엘의 처지를 제대로 말해주잖아요. 캐스도 지미도 4시즌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뭘 하든 항상 결과가 자기 의도와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그 허무함이 이 친구를 제일 불쌍하게 만들죠. 샘과 딘은 아버지를 극복하기라도 했죠, 이 친구는 아직도 아버지한테 집착하고 있는걸요. 이번 시즌에 그 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지만요.

    으윽, 저는 한줄로 끝난 생각을 이렇게 글로 자세히 풀어내시다니 대단해요.

  3. 생각해 보면 캐스가 천국에서 어떤 식으로 뒷담을 들을지 저절로 연상이 됩니다… 들었어 들었어? 카스티엘이 말로는 다 화합해야 한다구 난 브라더를 죽이기 싫다 했으면서 브라더가 변명하기도 전에 칼던져서 죽였대 ㅋ 어머어머 어쩜 애가 그러니? 완전 짱나ㅋ 캐스는 단 한번도 착한 천사였던 적이 없었어요ㅠㅠ 전 우리엘이 죽을 때도 참 씁쓸했는데 몇 천년간의 전우를 단순히 반역했다는 이 유만으로 죽게 내버려 두다니… 캐스 성격은 딱 그래 보였어요. 아닌 건 아닌 거고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죽어야 한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ㅠㅠ 전우고 뭐고 없는 ㅠㅠㅠ.. 딘이 캐스 옆에서 살아남은건 단순히 딘이 주인공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지른 만큼 갚아야 한다.. 그러고보니 카페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죠. 천국의 리더가 된 캐스는 자기가 죽인 천사의 수 만큼 낳아야 한다고……….. 으히히히;

    1. 워리님 글의 덧글에 워리님보다 먼저 댓글 달아 죄송합니다. (–)(__)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픈 점이 있어서요. 카스티엘은 물론 ‘착한 천사’가 아닙니다.^^a;;; 중요한 것은, 사실 카스티엘이 ‘선한 존재냐, 악한 존재냐’가 아니죠. 그가 서슴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동기’가 중요하단 겁니다. (사실 우리엘을 거침없이 죽인 건 애나였고 카스티엘은 죽게 내버려 두고 말고도 없었죠.) 그 이후 5시즌 1화에서 천사들을 죽인 건, 그 뒤에 이어진 2화에서 카스티엘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했듯이 “오로지 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딘이 카스티엘 옆에서 살아남은 건 단순히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건… 딘에 대한 그의 뼛속깊은 헌신, 그리고 딘이라는 위치가 차지한 중요한 동기를 너무 무시하시는 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왜냐하면 4시즌 16화에서 우리엘에 대해 카스티엘이 분노한 이면에도, 딘에 대한 염려가 깔려 있었거든요. 가만히 보세요. 우리엘이 동료 천사들을 죽이고 반역했다는 점에서 카스티엘이 화를 냈던 게 아니라, “you broke the devil’s trap, set Alastair on Dean!?” 하면서 화를 내지 않았습니까? 이게 어찌 보면 우스운 게요 – “네가 반역해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죽였어?” 하고 화를 내기 보다 “네가 악마의 덫을 깨뜨리고 알라스테어를 풀어서 딘을 다치게 했어?” 하고 화를 낸 거거든요.

  4. 좋은 감상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워리님~(–)(__) 근데 이렇게 좋은 글에 제가 감히 – 약간 딴지처럼 보이는 댓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a (가능하면 카페에 올려주셔도 될까요?+_+ 괜찮으시다면 거기서 좀더 구체적으로 엮어서 답변글을 드리고 적고 싶습니다만…)

    일단 몇 가지만 말씀드자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복자’ 둔스 스코투스가 “하나의 못 머리 위에 몇 명의 천사가 춤출 수 있는가?(How many angels can dance on the head of a pin?)”에 대해 토론을 벌였던 것은 결코 ‘무의미함’이나 ‘무상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둔스 스코투스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는 게 그가 ‘바보(dull)’ 혹은 우둔하다는 증거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합니다만…^^a 사실 둔스 스코투스는 이 명제를 ‘인식론’에 대한 비판으로 써먹었다고 합니다. 뭔 말인고 하니…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를 ‘인간 우위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지성적-이성적 존재들이고 일종의 ‘집단적 공톤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했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화된 특성, 감정, 욕망을 가진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봤던 겁니다. 그러나 둔스 스코투스는 천사를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개성을 지닌 존재로 보았으며 심지어 ‘인간과 천사는 동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숱한 천사들의 개성은, ‘하나의 못 머리 위에 춤출 수 있는 천사들의 숫자만큼 무한’하다고 보았답니다.+_+ 오묘하죠? ‘끝없는 무한함’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작은 – 어쩌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 하나의 핀 머리 위에서 춤추는 천사들의 숫자에 비교하다니 말입니다.
    즉 둔스 스코투스는 이를 통해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으로 ‘불가지의 존재’를 가늠하려는 어리석음을 꼬집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어졌습니다만, 하여튼 이 경구 자체가 이른바 ‘지성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천사들이 인간의 우위에 있는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 대해 한 번 유념해 주시길 바라고요… 또한 ‘아무리 많은 천사들이 하나의 핀 머리 위에서 동시에 춤춘다 하더라도, 그들이 결코 – 토마스 아퀴나스의 단언처럼 – 하나의 뜻으로 뭉친 집단적 존재는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는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해석도 있습니다.

    저는 결국 <슈내> 4시즌 16화의 주제도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습니다. 무상함이나 무의미함 보다는, 인식되는 것과 인식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천사가 과연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하는 것 말입니다. 이건 벤 에들런드 일관되게 제기하고 있는 주제 – ‘<수퍼내추럴>한 존재, 초자연적 존재는 과연 인간과 별다른 존재들인가?’ 하는 의문과도 상통하고요.^^a 이게 참 재밌는 게요, 에릭 크립키는 이런 점에서 거의 이분법적 사고를 보여주거든요. ‘인간 대 초자연적 존재’하는 식으로요. 근데 벤 에들런드가 쓴 각본들을 보면 (카스티엘 천사님 등장 이전의 대본들에서도)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흐릿하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워리님은 ‘그냥 덮는다’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정반대의 느낌을 받았거든요?+_+a 즉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말고 나간다’고요. 그게 우스갯소리를 가장하고 있을지언정 주제의식을 일부러 흐리려는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말을 빌자면 “문예비펑의 저울로는 달리지 않을 만큼 가벼운 외피를 뒤집어 썼을 때, 비로소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랄까요? (그런 점에서도 이 <슈내> 6시즌 3화 ‘The Third Man’을 보시고 감상문 쓰시려 하셨을 때 느끼신 당혹감이 이해갑니다. 아니 분명 굉장히 가볍고 슬렁슬렁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담고 있는 주제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란 말이죠.=ㅁ=;)
    발타자르의 대사도 그레이엄 그린이 쓴 <제 3의 사나이>를 단순히 오마쥬한 게 아니라, 그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단순히 인간 관계에 대한 얘기가 아닌 – 현실 사회 혹은 정치에 대한 은유적 함의로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차차 했으면 하고요…

    카스티엘이 5시즌 프리미어에서 동료천사들을 죽인 건 에릭 크립키가 별 생각없이 그렇게 썼다는 말씀이 아마 맞을 겁니다.^^; 근데 거기다 세라 갬블이 2화에서 첨언을 했죠. “I killed two angels this week. My brothers. I’m hunted. I rebelled and I did it — all of it — for you.”
    이 대사처럼, 카스티엘이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동기 이면에는 딘이란 존재가 있다는 얘깁니다. (이건 절대 절대!!! 슬래쉬적인 해석이 아니라 작가들이 대놓고 의도한 거예요.-ㅅ-a 아니면 아예 이야기를 풀어갈 수가 없으니까요.)
    위에 난하님 댓글에도 덧덧글을 드렸습니다만 – 4시즌 16화에서도 우리엘이 동료 천사들을 죽이고 반역했다는 데에서 카스티엘이 화를 낸 게 아닙니다. 잘 복습해 보면 카스티엘이 ‘버럭!’하면서 내뱉는 대사가 그거였어요. “you broke the devil’s trap, set Alastair on Dean!?” 따져보면, 어이없지 않습니까?^^; “네가 반역해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죽였어?” 하면서 화를 낸 게 아니라 “네가 악마의 덫을 깨뜨리고 알라스테어를 풀어서 딘을 다치게 했어?” 하고 화를 냅니다.

    <슈내> 100번째 에피소드 제작 비하인드 영상에서도 보셨듯이, 현장에서 제작진들조차 카스티엘을 “Gay Angel”이라고 놀리죠? 이건 그냥 농담거리가 아닙니다. 카스티엘은 분명 대의를 중시하는 강직하고 고지식한 천사이지만, 그만큼이나 여기서 ‘사랑에 미친’ 천사로 표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에도 한 번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만… 이런 두 가지 특성들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
    이번 6시즌의 카스티엘이 보여줄 향방에 대해 세라 갬블 스스로가 설명한 말이 있습니다. “Cas is torn between the massive work there is to be done in Heaven and his desire to be with Dean & Sam, to help them.” 이건 천국에 대한 그의 막중한 의무감과 나란히 병치될 만큼 그의 ‘개인적 욕망’ 또한 크다고 볼 수도 있는 설명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아니라면요…*^^*)

    하여튼 이 드라마에서 천사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는 만큼, 카스티엘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참으로 파고들수록 독특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 듯 합니다. 애초에 그럴 수 있게 만든 사람이 미샤씨이긴 합니다만…^ㅁ^b 저는 카스티엘이란 천사를, 여기 나오는 다른 천사들과 뚜렷하게 구분짓는 한 가지 아주 아주 커다란 특징이 있다고 봤어요. 이게 어쩌면 그를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면이기도 한데요 – 아! 물론 딘한테 반해 있다는 건 빼고요.^^; (ㅋㅋㅋ) – 그게 뭔지 짐작하시겠습니까?

    아이고, 이거 쓰잘데기도 없는 헛소리 주절 주절 늘어놓아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저의 ‘글 길게 쓰는 저주’는 여기서도 발휘되지 말입니다…OTL

  5. 와앗!!! 이 길고 긴 리플의 행진은!!! 이거슨조흔리플입니다. 으흐흐 ;;; 아예 글을 따로 빼서 써야겠군요. ㅎㅎ 아이고 써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

  6. 6시즌을 열심히 보면서도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는 1인…………의 뻘쭘함;;;

    1. @jeanue / 슈내는 걍 봐야 하거늘… 이거까지 피곤하게(???) 보는 건 내 고질병이겠거니… (먼 산) 사실 난 고백하자면 저러고 보는 게 더 뻘쭘해 -_- 왜 난 무념무상의 경지가 의도적으로는 안 될까. 쓴 사람들의 심오함과 별개로 좀 걍 보고 싶건만.

  7. 토렌트로 받으면 꼭 하나씩 깨지는 영상입니다. 다행히 3편은 무사합니다.ㅎ
    저는 멍~하니 봤어요. 이전 시즌들과는 다른 느낌들이라 감을 잡기 힘든 부분도 많네요.

  8. Pingback: 워리넷
  9. ㅎㅎ.. 워리님 자막으로 3회를 이제야 봤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혹시 자막 피드백을 받으시는지 모르겠지만 ^^; 한가지 제가 아는 것만 써보겠습니다.
    3회 자막중에 초반에 13분쯤 제임스왕 께선 뭐라 하실지 모르겠다 이 부분이요.
    아마 제 생각엔 성경중에 영국의 제임스 왕이 정리한 King James Version을 이야기 하는 것 같네요;
    거기에 물음표를 해두셔서 지금은 아실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싶어 남겨봅니다 ^^

    1. @깜장토끼 / ㅎㅎ 그 안들호 자막을 ;;; OTL 저도 나중에 그게 킹 제임스 판본이라는 걸 알았는데, 귀찮아서 ;ㅅ; 다들 알아서 고치시겠거니 하고 있었습니;;; 이번이야 제가 알아차린 거지만 그런 오류나 빠진 거 발견하시면 알려주세요. :D

  10. 게이 ㅡㅡ; 부녀자들이 대부분이라서 ㅠㅠ 오컬트나 슬레셔팬들은 점점 입지가 작아집니다. ㅜㅜ

    암튼 동정이는 동정심이 상당히 강한 천사였던것 같은데 다른 대부분의 천사들이 인간을 혐오하고 경멸하는데 비해서요.

    마이클 수감된 뒤에 확실히 무정부 상태인듯….

    근데 캐스나 개브리얼이 어째서 민폐스터 같은놈들한테 설득당한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특히 딘 이놈이 가장 큰 원흉인데 자기는 샘 죽이지도 않을거면서 개브리얼한테는 죽이라고 협박(?)하고 애초에 지가 뭘 잘한게 있다고 4×22땐 캐스한테 윽박지르고 -_-;

    뭐 캐스야 돌아왔지만 개브리얼은….

    망할….

    마이클과 루시가 지옥을 탈출한뒤 인간을 순살하면 됩니다. (?)

    요샌 하도 천사악마가 적어서 인간까기요소가 부족하다보니 흥이 별로 안나네요. ㅋㅋ

    1. @핍보이 / 전 가브리엘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고 봤던지라 ;; (물론 딘희 그 놈이 하는 말은 몇 대 패 주고 싶었고요. 아니 지는 지 동생 그리 감싸면서 정말 남의 형 그러라는 말이 어찌 그리 쉽게 나오나요) 설득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설에서부터 가브리엘은 원래 전령사로서 사람이랑 친화력이 높은 천사잖아요. 그리고 도망 중에도 못된 인간 곯려먹고 다녔다는 점에서 걔는 그래도 끝까지 원래는 사람 좋아한다고 밖에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 -;;;; <도망자> 킴블 박사도 아니고 <프리텐더 제로드>의 제로드도 아닌 주제에 말입니다.
      세라 갬블이 가브리엘 역 맡은 스파이트를 꽤 좋아했던데요, 문어대마왕도 없겠다 어쩌면 무슨 수를 낼 지 누가 알겠습니까. 히히. 그리고 이번 주 에피소드엔 가브리엘을 떠올리는 건 조금 나오는 거 같던데요.

    2. 그런가요???

      확실히 그래두 죽은 악마나 천사는 안돌아오니 ㅠㅠ (캐스는 인기때문에 예외적으로 비튼거겠지만) 그 늙은 (!) 여작가분이 개브리얼 배우를 좋아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ㅋㅋ

      아 이번에피 무슨 진실을 알려주는 여신인가 그거관련이라서 재밌을것 같네요 ㅋㅋ

      근데 이거 끝나면 볼게없 ㅠㅠ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