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야 잘 살아

지난 10월 31일. 저는 ‘할로윈 핑계를 대고 캐스 오덕질을 하는 거야’하고선… 네, 트렌치코트 자락 휘날리며 졸개컵에 커피를 담아서 양재천에 갔습니다.

.. -_-

왜 양재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날씨 곧 추워진다니 더 추워지기 전에 가야겠죠. 그리고 우아하게 코트 휘날리며 모델워킹을 하려던 중에, 발 밑에 뭔가 보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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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참새였습니다 -_-;;;;;

전 처음엔 죽은 줄 알았어요. 누워서 꼼짝도 안 해서, 길바닥에 있다간 자전거에 더 대형참사 나겠다 싶어서 집어들었더니만, 엥? 살아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나하다가 저쪽에 앉을 만한 곳이 있길래 가서 손으로 품고 있었습니다. 기실 야생동물이 힘들 때는 가장 최선이 쉬는 거죠.

이 참새를 손에 쥐고선 앉아 있으려니… 어떤 아저씨가 데리고 온 강아지가 제 주변을 뭔가 이상혀하는 눈초리로 뱅뱅 돌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처자 뭐하나 이러고 쳐다보기도 하고;;; (다 운동 나온 사람들인데 저 혼자 트렌치코트라고 생각해 보십쇼) 앉아서는 휘적휘적 캐스 덕질을 걸어주는 거 대신 생각으로 하고요.

‘이건 밥이 아저씨 다리 못 고쳐주는 캐스 심정이구먼. 크라울리가 고쳐주는 거 보고 얼마나 부러웠을까. 근데 내 옆에는 크라울리가 없네. 그건 다행이지. 그러고보니 왜 이리 힘이 없니. 고개 자꾸 까부리지 마라, 간 떨어지잖아;;; …모 님 팬픽에선 캐스가 외로우니까 아무거나 다 집어들고 오던데, 나도 집어들고 집에 갈까… 아냐 우리집은 늠 떨어져서 안 돼. 그리고 부모님이 아마 딘희와 샘희처럼 난리법석이 날 테고. 얘는 여기가 집이니까 가장 가까운 데 있어야 하는데. 아까 오다가 참새들이 단체로 떠드는 걸 본 것도 같아. 혹시 천사들도 그러고 다니는 걸까. 떼거지로 모여서 다니다가 무슨 일 있으면 그때만 혼자 온다던가. 맞아. 그러고보니 캐스가 시즌4에서 자기네 ‘진영’ 얘기를 했어. 정말 떼거지가 맞구나. 이럴 땐 나도 고양이탐정처럼 참새처럼 생각해야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떼거지를 하고 있을까 몰라. 아참. 모모 님의 “택배천사 카스티엘” 보면 캐스가 손도장 찍어서 그나마 딘희나 기억하고 샘희나 바비는 구별도 못한다는 게 맞는 말이구나. 그 분 천재야. 정말로 탁월한 통찰력이야. 내가 아는 종이 아니라면 구별이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라구. 얘 나중에 또 만나도 전혀 모르겠어 -_- …. 사진 인증이나 하자’

진짜 이러고 있었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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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품고 있는 동안, 신기한게 점점 심장 뛰는 게 느껴지더랍니다. 어이구 다행일세… 하고 보니 넵. 손에 똥도 싸 주시고 -_- 여튼 그건 좋은 신호인 거 같더군요. 그런데, 워낙에 힘이 없어서 푸덕거리만하고 날지를 못해요 ;;

그래서 계속 쥐고 있었는데, 한 30분을 그러고 있으니까 이건 도통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손 안에서 일어서기도 하고 해서
1) 동물병원을 찾는다 – 문제: 일요일이다
2) 참새는 떼로 다니니까 얘 친구들을 찾는다

그래서 아까 오다가 분명 참새 집단 서식지(-_-)를 봤던 기억도 나고 해서 한쪽 방향으로 걸어갔죠. 그랬더니, 과연! 저쪽 냇가 쪽에서 참새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리고 얘도 거기에 삐약삐약 소리 내고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더니만, 지가 흥분해서 퍼드덕 ;;;; …. 근데 날지는 못하고 그냥 덤불 속으로 쏙 들어가더군요.

-_- ………………

… 그래도 그 날은 날씨가 좀 포근했고 근처에 참새들이 있었으니 좀 나았으려나요. 근데 늠 길가 덤불로 들어가서 그게 좀 ;;; 공 던지듯 친구들 쪽으로 던져줘야 했을까요. 여튼 꼬맹아. 오래오래 살아라. 그래야 내 맘도 좀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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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얘 보내고 나서 손 씻을 화장실 찾는 게 시간 더 걸렸다능요.)

 

11 Replies to “참새야 잘 살아”

  1. 어린 참새가 첫 추위에 놀랐나보네요. 워리님 온기 덕에 잘 살아 있길 빌어봅니다.
    지난 주 산에 갔을 때 어린 냥이가 김밥 달라고 제 옆까지 와서 깜짝 놀랬어요. 산에 먹을 게 없으니
    낯선 사람이 무서운 것도 잊고 다가오더라고요.ㅠㅜ 점점 야생동물들이 살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1. 어린 냥이가 산에 있었어요?
      누군가 유기한 녀석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됩니다. 에휴..

    2. @디오티마 / 저도 그 고양이 ;; 산고양이가 아니라 누가 버리고 간 게 아닐까 걱정되네요 T T 정말이지, 근래는 사람살기 힘든 세상이 아니라 사람 빼고도 다 살기 힘든 세상인 거 같아요.
      @jeanue / 너 말 듣고 나니까 나도 덜컥 걱정된다 ;;; 곧이어 겨울인데.

  2. 트위터에서 잠깐 본 기억이.. 애가 눈을 감고있는건지 눈주변 털도 글코 빛깔이 좀 꿰재재한게 아파보이긴 하는데.. 처음에 죽은듯이 널부러져있었다는게 걸리네요. 살아있.. 죽어도 뭐 어쩔수 없죠.. 어떤 전차였건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면 그대로 두는게.. 일단 생명앞에 측은함은 들지만 만약 죽었대도 죽기전 잠시나마 다른 종의 어떤 사람동물이(그것도 무려 천사-캐스 코스프레를 하신ㅋ) 자기의 마지막 가는 길에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것에 행복까진 아니어도 한쪽 입꼬리 정돈 씩 올리며 하늘로 가지않았을까.. 뭐 그렇네요. 근데 손은 꼼꼼히 잘 씻으셨죠? 산 동물은 살아야죠~^^

    1. @차우 / 보셨군요 ^^;; …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는데, 눈은 말똥말똥 뜨고 있었어요. 근데 털이 정말 부시시하고 윤기도 별로 없는 것이, 기력이 많이 떨어졌더라고요. 척 봐도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그런 식으로 보낸 게 많이 걸려요.
      ㅎㅎ 서초구가 공공시설물 하나는 잘 되어 있습니다. 찾는데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뜨신 물도 나오고 비누도 있었어요. 보송보송 잘 씻고 나왔습니다 ^^

  3. 단지 캐스 코스프레를 할 뿐이었는데 어째 상황이 묘하게 캐스와 연결되네요.
    역시 좋아하면 주위 상황도 어떨땐 비슷하게? 닮아지는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요.
    그나저나 참새가 워리님 덕분에 살아나서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라봅니다.
    센타로의 일기에서 참새가 생각나네요. 갑자기.ㅋ

    1. @강타빈 / 뭐 덕질 제대로 했다고 위안하고 있습니다. ;;; 제대로 푸드덕 날아가는 걸 봤으면 좀 나았을 텐데, 살면 제대로 살길 바라는 수 밖엔 없네요. 센타로가 누구지 하고 찾아보니까, 아, 그 토끼군요!!! ^^;;

  4. 대단하세요…저도 새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상자에 담아놨더니 다시 날아간적은 있었는데…
    암튼…^^;;;;;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1. @누리 / 저도 그 참새 잘 살길 바랄 뿐이죠. 와 떨어진 새도 챙겨주시고 ;ㅅ; 멋지십니다. 세상은 역시 따듯하와요.

  5. 잘 살아 있을 거여요. 이제 쟤는 매점에 들어가서 포르노 잡지랑 생수를 훔칩니다. 그리고 좀 있음 워리님을 소환하겠죠. 오호홍////

    1. @난하 / 격뿜했습니다. OTL … 그럼 저 이제 털 부시시한 참새 뒤집어 써야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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