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내추럴에 등장하는 괴물의 서브텍스트

뭐 기다리는 중에 이 글 쓰다가 순서 되어서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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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수퍼내추럴의 벤 에들런드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에들런드가 늘 함의(서브텍스트)를 놓치지 않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품이던 오래 지속되면 자기 내부 논리를 갖추는 법이고, 그 논리나 경향은 결국 그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죠. 벤 에들런드는 수퍼내추럴 시즌2부터 작업하면서 주로 악마나 천사 쪽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이 많고 그쪽 함의를 표현해 왔습니다. 그 얘기는 벤 에들런드 이야기를 하며 꽤 해 온 편이고( [x] [x] [x]), 지금 제가 하고픈 건 “괴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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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내추럴에서 괴물은 처음엔 형태가 인간에 가까울 뿐 인간과 구별이 확연하고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였습니다. 시즌 1 후반에 흡혈귀가 인간형 괴물로 등장하고 이들이 직사광선만 피하면 되는 등 유형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움직이는 기제가 완전히 다르게 등장하죠. 솔직히 인간이 흡혈귀 피를 먹으면 사고방식이 바뀐다고 하는 건 좀 우스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일종의 사고방식전환의 은유로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이야기에선 가능하다고 보고요. 실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신체적으로 느끼고서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 있으니까요. 외형을 남과 똑같이 바꿀 수 있는 변신괴물 같은 경우는 더더욱 ‘알고 있지만 아는 존재가 아닌’ 이중의 공포를 일으키죠. 늑대인간은 인간일 때와 늑대인간이 될 때의 자아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괴물은 그런 존재였어요. 인간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고, 그래서 인간을 기꺼이 식량으로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센 포식자입니다. 그래서 시즌5까지의 크립키 체제에서 보여주는 ‘괴물=사악한 것=일단 댕강’ 공식은 말이 되었어요.

시즌 6에서 세라 갬블과 벤 에들런드가 괴물의 시초(알파)와 어머니를 내세우면서 이 단순한 공식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귀신 하나 못 잡아 낑낑대던 형제들이 악마 쯤이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레벨업하고, 무엇보다도 악마의 존재가 생기면서 괴물의 입지가 하향조정되지요. 그래서 괴물의 입지는 ‘인간을 잡아먹는 포식자’에서 ‘인간과 같이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어요. (그 얘기는 여기서) 이런 입지조정으로 인해 괴물은 무조건 사악한 존재 자리에서 입지가 애매해집니다. 아무리 괴물이 인간의 포식자라고 해도, 인간이나 악마가 본능충족(생존, 식사)가 아니라 이익추구를 위해 고문하고 정보를 얻는다는 건 사악한 짓인 거죠. 변신괴가 제일 문제였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로 인간을 해치는 게 아니라 단지 신체적 우위를 핑계로 인간을 농락하고 해쳤던 것과 같은 거죠.  특히 벤 에들런드가 묘사하는 변신괴는 연쇄살인범에 더 가까워요. 흑백 에피소드의 변신괴는 자기가 괴물인 걸 자각한 건 ‘아버지가 자기를 괴물이라 부르며 삽으로 때려죽이려고 했을 때’라고 하죠.(왜 변신괴물한테 인간 아버지가 있지? 라는 질문의 답은 시즌6에 나오죠)

시즌 6부터 부쩍 인간과 친화력이 높은 괴물들이 등장한 건 그런 점에서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인간과 악마와 괴물이 종족이 아니라 개별체로서 등장했기에, 인간과 괴물의 차이에 대하여 인식할 줄 아는 지성이 있는 개체 등장도 사뭇 자연스러웠어요. 6.08 All Dogs goes to Heaven에 나오는 스킨워커는 대표적이에요. 더 나은 신체적인 조건을 갖출 수 있다고 해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만, 인간으로서의 습속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 에피소드의 비극은 거기서 최고치를 찍죠. 결론적으로 인간도 아니고 괴물도 아닌 상태로 버려지거든요. 잘 생각해 보면 괴물이 되어서 인간성을 버리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는 거에요. 괴물이라는 다른 개체로 태어났지만 여전히 인간의 습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성이 괴물로서 작동하지 못하는 거죠. 6.05 Live Free or Twihard의 보리스는 얼핏 보기엔 지저분하고 폭력적인 괴물의 행동을 하지만, 철저히 생각하고 판단에 의거해서 움직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확고히 알고 있으며 자기 의도를 넘어서는 큰 그림의 존재를 이해하거든요. 인간을 위하지 않는다 뿐이지 자기의 존재의의와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건 종족초월입니다. 6.11 Appointment In Samarra의 발타자르도 대표적이죠.  (‘영혼 없는 샘’은 지성에 인간미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괴물과 비교가 될 수 있었죠. 흡혈귀 시초는 ‘영혼 없는 자를 괴물로 만들면 가장 완벽한 괴물이 될 거다’하고 반가워(?)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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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그 반대급부도 일어나야 합니다. 괴물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면,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해요.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왜나면, 수퍼내추럴에서 늘 일어나는 말썽은, 시즌 7 이후에도 인간성=지성=선함 이 공식을 버리지 못했거든요. 시즌 6에서 지성을 가진 괴물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 이야기했다면, 그 다음은 당연히 지성에 의거해서 선한 인간성은 노력에 가깝지 그 자체로 선함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어야 합니다.

근데 오히려 시즌 7에서 도로 시즌5 상황(괴물=무조건 댕강)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엄청나게 문제가 커요. 왜냐하면, 시즌 7에서 등장한 괴물 레비아탄이 일으킨 사단의 차원이 단지 포식자를 넘어섭니다. 레비아탄은 인간 속에 숨어 들어가서 아예 자기들이 인간을 사육할 계획을 세웁니다. 시즌 6에서 이브는 서로 먹고 서로 사냥하고의 관계를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냅둔 반면, 레비아탄은 뭐하려 식량에게 기본권을 주느냐는 기초적인 발상전환을 하죠. 그리고서 인간의 사회체계 중에서 가장 취약한 단면 – 경제쪽을 파고 들어가 장악을 시작합니다.(문제는 이게 드러난 에피소드가 전체 23편 중에서 막판 20편 22편 23편. 게다가 20편에서 그 성의 없는 설명씬. 재미 여부를 떠나 슈내 작가들 실력 형편 없단 소리 들어 쌉니다.) 이 비인간적인 면모가 과연 지성(생각하고 판단한다는 면에서)과 관련 없을까요? 인간이 인간을 자비 없이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자기 종족보전의 문제에서 걸리기 때문에 제동이 걸립니다. 그런데 괴물이 인간을 ‘동물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걸리고 말고가 없어요. 인간이 식량을 산업화하면서 특히 동물사육에서 생명경시의 행동을 하는 것을 그대로 레비아탄이 인간에게 합니다. 거기에 인간이 생존의지를 내세워야 말이 되지, 인간=선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되나요? 왜 인간이 동물을 먹는 존재이면서도 잔인성을 최대로 배제한 ‘예의’와 ‘절도’를 갖춰야 하느냐는 것과 같은 답이 나와야죠.

수퍼내추럴 시즌 6 끝날 즈음 – 7 시작 즈음에서 뭔가 난리법석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아직도 궁금해요. 일본 관동지방 대지진으로 카메라 대여가 안 되어서 완전 다른 장비 빌려다 자조적인 평에 따르면 ‘연습하며 찍은 것’만이 아니라(이 때문인지 시즌 7부터 화면의 개성이 완전히 사라지죠) 이야기 자체가 완전히 미끄덩해요. 그 정도로 작가진 내부에 뭔가 큰 건이 있었어요. 작가들은 같은데 그 이야기를 둘러싼 사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시즌 6에서 괴물에게 지성을 부여했기에 사람과 비슷한 반면, 시즌 7부터는 그냥 사람 괴물 분장 살짝 시키고 괴물로 퉁치는 걸로 아주 게으르게 바뀝니다. 괴물의 행동양식이 그냥 사람이랑 똑같아요. 사람 죽이는 캐릭터 하나 만들고 그냥 이름표에 괴물 하나 달아준 것 뿐이에요. 그리고 인간은 괴물 사냥이라면 뭐든 면죄부를 받아요.  7.03 The Girl Next Door에서 제가 제일 폭발했던 것이 시즌 6에서 나왔던 주제가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였는데 그걸 ‘어머니가 어쩌건 말건 괴물이므로 댕강’으로 만들죠. 심지어 지성의 고급 단계인 ‘약조’까지 한 사항을 남이 가서 깽판 쳐 놓고 할 일을 한 거라고 시즌 내내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나쁜 존재입니다라는 얘기를 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인간은 무조건 선하고 보호받고 괴물을 죽이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약속 따위 깨도 되고, 괴물과 한 약속은 인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으로 나가요. 이러니 제가 같은 작가진이 정말 맞나 이러고 눈을 의심했죠. 작가진 자체의 지성을 의심하는 상황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리하자면, 수퍼내추럴에서 보여주는 괴물에 대한 함의는 시즌 6에서 아주 잠깐 꽃을 피웠다가 그냥 사그러집니다. 다만 그 꽃이 워낙 인상적이기에 저는 여전히 그 미련이 있는 것 뿐이죠. 시즌 10인 지금도 괴물 이야기가 맥아리 없고 지지부진한 상당수 이유는 괴물에 대한 함의(서브텍스트)가 완전히 망가진 것도 한 몫 해요. 시즌 1 처럼 씬난다 이러고 댕강 이게 안 됩니다. 게을러져서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빨 하나 달아주고 괴물이라고 퉁치는 분위기 때문이죠. 긴장감이 하나도 없는데, 이건 전적으로 작가들 잘못입니다. 프로덕션 상태가 극도로 게을러진 것도 한 몫 합니다. 200화 특집이라는 에피소드의 칼리오페 보세요. 누가 봐도 유치원 학예회 수준이미 미국 드라마 수준인가요. 시즌 7 이후의 수퍼내추럴 괴물이 가진 함의가 있다면, 게으른 작법에는 상상의 여지도 없다는 걸 증명한다 정도겠군요.